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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폼페이의 최후와 잉카의 최후, 그리고 문자

 

폼페이의 최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우뚝 솟아 있는 배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것은 서기 79년 8월24일 정오쯤이다. 이 화산으로부터 13km쯤 떨어진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인해 뜨거운 화산암을 덮어 쓰고 죽거나 고온 가스와 열구름에 질식사를 하는 등 2,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 소 플리니우스의 어머니가 배수비오 화산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아들에게 알렸고 그는 어머니와 피신을 한 후에 폼페이의 재난을 상세히 적어 역사가인 타키투스에게 보냈다. 로마 황제는 구조대를 보내 나름 폼페이를 살려보려 했으나 유독가스와 화산재등으로 인해 접근이 불가능했으며 접근했던 이들중 다수가 목숨을 잃자 구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폼페이는 1m에 달하는 화산재에 덮혀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잉카의 최후

남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안데스 산맥 일대에 있었던 잉카 제국은 지금의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북부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가진 나라였다. 잉카는 해발 3,400미터 고원 지대에 수도인 쿠스코가 있었는데 이는 '중심부'라는 인디오 말로 쿠스코는 태양에 의해 빛나는 성지이며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다.

 

 

유럽사람들은 잉카의 정체를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지만 안데스 산맥 어딘가에 황금으로 치장한 황금도시가 있다는 걸로 잉카를 알고 있었고 잉카를 '엘도라도'라 불렀다. 스페인 사람 피사로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말과 군대를 이끌고 위장 잠입해 잉카의 황제 와타왈파를 죽이고 잉카를 점령하였다.

잉카에 들어간 것은 1532년 9월 24일 이지만 1532년 11월 15일 작전을 개시한 지 30분만에 황제를 사로 잡고 잉카를 손에 넣었다.

 

 

폼페이와 잉카의 공통점, 문자가 없다

이틀간의 화산폭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환락의 도시 폼페이와 30분만에 사라진 황금의 제국 잉카, 폼페이는 당시 로마 귀족들의 별장지로 유명한 곳으로 발굴된 유물로 미루어 쾌락을 추구하던 도시가 아니였나 추측하고 있다.

잉카는 요새같은 지역적인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고 기고만장했던 황제때문에 2백명도 안되는 군사에게 넘어갔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본다면 폼페이나 잉카의 최후는 안타까울만큼 허망하다.

 

 

그런데 두 곳의 유사한 점이 있다.

폼페이의 경우 생존자가 많았음에도 화산폭발과 그로 인한 참극을 전하는 자료가 거의 없다. 어머니 덕분에 재난을 피한 소 플리니우스의 편지 몇 통이 전부이다.

잉카의 경우 화려한 문명을 자랑함에도 문자는 없었다. 그 높은 곳에 어떻게 도시건설을 하고 유지했는지를 알려주는 문자 자료가 없다. 그림이나 매듭만으로 문자 역할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다. 그러기엔 규모가 너무나 큰 제국이다.

폼페이엔 폼페이의 최후를 알려줄 문자(자료)가 없고 잉카엔 잉카를 유지해줄 문자가 없었던 건 신의 뜻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