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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동방견문록의 진실은?



지난 글 '잊혀지지 않는 세계의 10대 사건'에서 임의로 선택한 10대 사건에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도 포함되어 있다.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동방견문록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당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동방견문록의 진실성에 누구보다 많은 의문을 품은 학자는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학과 과장인 프랜시스 우드다.
그는 1995년작 '마르크는 정말 중국에 갔을까?'에서 그가 페르시아까지만 갔었던 것이 확실해 보이며, 실제로 중국에 갔다온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동방견문록 진위를 의심하는 걸까?
과연 어떤 점이 동방견문록의 진위에 대해서 끊임없는 시비를 불러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가 본것의 절반만 말했을 뿐이다'

마르크 폴로가 '동방견문록'에 대해서 한 말이다.

이 책의 원제 Divisament dou Monde는 영어로 번역하면 Description of the Wolrd, 즉 '세상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이 책이 원래 제목보다 '동방견문록'으로 더 유명해진 것은 서양인의 눈으로 동방의 신비로운 세계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리서이자 박물지이고, 여러 민족의 생활보고서이다
13세기 후반의 유럽인에게 세로운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세의 가장 영향력있는 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책은 당시 유럽인이 전혀 몰랐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남해 등의 문명을 소개했으며, 훗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계기가 되는 등 지리상의 발견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마르크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단순히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세계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는 데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마르크폴로가 정말 중국에 갔을까?

하지만 마르크폴로의 책을 새빨간 거짓말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당시에도 일부에서는 그가 이야기 도중 걸핏하면 '백만'을 운운한다고 해서 그를 '밀리오네(milione)'라고 부르기도 했다.
백만가지 거짓말을 둘러대는 거짓말쟁이라는 뜻이다.

그가 정말로 중국을 다녀왔을까?

그를 믿지못하는 사람들은 책의 상당 부분을 어떤 책에서 베끼거나 일부러 꾸며냈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 왜 그렇게 추정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첫째, 마르크폴로가 보고했어야 마땅한 것들이 모두 빠져 있다.

예를들어 10년 이상 중국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만리장성을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여행했다고 주장하는 경로를 지나가 보면 적어도 한번 쯤은 만리장성을 넘어야 하지만, 책에는 만리장성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 


그리고 당시 중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던 서적인쇄술에 대한 기록도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한 차를 마시는 것이나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 여성의 전족 등 중국의 전통적 관습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 당시의 중국 문헌 어디를 봐도 마르크폴로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마르크폴로 말대로 그가 중요한 사신이자 황제의 칙사였다면, 그런 인물이 한 나라의 역사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마르크폴로의 여행 경로를 추적해 보면, 실제로 그 경로로 여행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저명한 탐험 연구가들은 페르시아의 국경을 넘어 마르크폴로의 경로를 뒤 쫓아 가기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넷째, 이상하게도 낯선 풍습과 도시 또는 나라에 대한 묘사에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카물은 탕쿠트 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 주에는 도시와 성이 많고 위대한 칸에게 예속되어 있다'와 같이 수백 페이지 이상 설명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면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는 다른 문헌을 보고 베꼈을 경우에만 가능한 표현들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마르크폴로라는 인물이 책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행에서 본 경치와 도시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은 것과는 달리,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예를들어 '측량사 마르크폴로는 오랫동안 인도에 살았다... 여행객이 그 도시를 떠날 때 그는 말을 타고 7일동안 광야를 달린다... 우리는 이제 센구이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등으로, 3인칭이나 1인칭 복수로만 등장한다.  

여섯째, 기행문의 구성 자체가 문제가 있다.

이 책은 '마르크폴로의 여행'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기행문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과 일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담아 놓은 메모 정리 상자와 같다.

이 책은 느닷없이 중동의 연대기로 시작하는데, 여기에서는 그 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이나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약간 알 수 있을 뿐이다.

여행 중인 마르크폴로의 구체적인 여정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위에서 증거로 나열한 여섯 가지의 추정이 억측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동방견문록은 당대에서 부터 지금까지도 그 진위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있는 책이라 하였다.

그러나 과장과 거짓이 섞여 있다고 하여도, 신비한 동방 세계에 대하여 유럽인들의 눈을 뜨게 해준 공로는 무시할 수 없겠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유럽 바깥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사실만으로도 세계 역사에서 동방견문록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마르크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진위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