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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강화도 고인돌과 역사박물관, 역사가 숨쉬는 현장

 

강화도 고인돌과 역사박물관, 역사가 숨쉬는 현장

 

내륙의 끝자락 강이 끝나고 바다와 만나는 곳 즈음에 섬 자체가 요새와 같은 섬 강화도가 있다.

 

 

 

 

 

 

 

신석기와 구석기의 생활유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각 시대별 유물과 유적들이 보물처럼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집단(80여점)으로 발견된 강화 고인돌은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얼마 전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당했던 297권의 왕실의궤가 있던 외규장각이 있는 곳도 강화도이다.  

 

 

물 위에 핀 꽃과 같다하여 '강화'라 이름 지어진 섬 강화도. 하늘에서 내려 온 환웅이 조선을 세우고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첨성단이 있는 곳 강화도의 역사를 알아본다.

고인돌이 집단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 생활하기 알맞은 환경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내륙과 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나머지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며 먹을거리 또한 풍부했을 터이다.

 

 

조개무덤과 돌도끼, 빗살무늬토기등 각종 도구들이 다양하게 발견되었고 청동기시대의 돌칼과 청동무기등 도구들이 고인돌에서 발굴되었다. 강화 고인돌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귀한 유물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에는 첨성단이 아직도 남아 있고 각종 중요 행사에 점화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1232년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1270년 도성을 개경으로 옮길 때까지 도성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에 저항했다.

 

고려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물인 고려청자는 도굴꾼에 의해 많이 도굴되고 훼손되어 안타깝지만 최항의 묘에서 나온 완벽한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섬세한 국화무늬와 유연한 곡선미가 우아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뿐이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으며 외세침략에 대항해 목숨을 주저하지 않고 강하게 저항해 프랑스군이나 미군들마저 강화도 백성들의 나라를 위한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1875년 강화도에 나타난 일본 선박과의 충돌사고로 빚어진 운양호사건으로 1876년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된다.

 

강화도는 하늘이 처음 열리던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흥망성쇄를 고스란히 보고 겪으며  천혜의 자연적인 요새로 외부 세력의 침범을 막아주기도 하고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거친 풍파를 오래도록 겪었다.

 

 

이젠 이름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더 이상 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아름다움만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