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 조선이 개국되었다. 젊은 선비 황희는 정치를 접고 산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태종의 거듭된 부름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황희 정승은 정승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청렴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을 낮추고 중용지도의 덕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재산이나 재물을 탐하지 않고 권력의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았으며 항상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는 일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황희 정승의 일화들
청렴했던 그의 삶과 관련된 일화로는 그가 죽었을 때 상복이 한 벌밖에 없어 자식들이 옷을 찢어 나눠 입었다고 하며, 그의 아들이 판서가 되어 커다란 집을 짓자 아들의 집에 갔다가 크게 실망하며 아들을 나무랐다고 하며, 세종이 몰래 그의 뒷조사를 했지만 청렴한 그의 생활상을 보고 무척 감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황희가 청렴결백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희 정승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도 배웠고(중학교 도덕책이었던가) 각종 서적을 통해서도 많이 접할 수 있어 그의 성품과 업적은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중에도 중용지도에 관한 황희 정승의 일화는 유명하다. 중용지도란 란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평범함 속에서 진실을 찾는 도리를 말한다.
중용지도, 그리고 회색의 의미
어릴 땐, 황희 정승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고 말하는 것은 우유부단한 회색분자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내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는건 혹시 자신이 선택한 결정이 미덥지 않아서 양 다리를 걸치는 꼼수는 아닌가하는 생각 말이다. 정확하게 흑백의 판결을 내려줘야 마땅하건만 왜 이런 말을 했으며, 왜 이것이 그토록 유명한 일화가 되어야하는 지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어쩌면 세상은 흑백만이 아닌 회색이 더 많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이치는 완벽한 선이나 완벽한 악이 없는 것처럼 흑백으로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던 그가 왜 조선의 신하가 되었는지 조금은 알것도 같다.
태종이 읊었던 시가 생각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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