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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논어를 통해 본 공자의 일대기

 

논어를 통해 본 공자의 일대기

중국 고대 사상가이며 유교의 시조인 공자(BC552 ~ BC 479)는  인간에게 최고의 덕목을 인(仁)으로 설파했다. 춘추전국시대를 살다간 공자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데 공자 사후 약 400년 이후에 기록으로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그래서 공자의 생애와 철학을 제대로 알려면 『논어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는 세상에 나아가 홀로 우뚝 섰으며, 40세에는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았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고, 60세에는 귀로 들리는 것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70세에는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논어>

 

논어에 나오는 위 문장은 공자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한 문장으로 공자 자신에 대한 회고로 보인다. 즉 공자의 일생을를 표현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논어에 표현된 공자의 일대기를 따라가 보겠다.

 

15세, 학문에 뜻을 두다

공자는 노나라의 창평향 추읍(지금의 산동성 곡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름은 숙량흘이라 하는데, 추읍의 대부로 멸망한 송나라의 귀족이었다.

공자는 부친이 말년에 얻은 자식으로 매우 총명하여 6~7세 때 벌써 제기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예를 흉내내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눈에 띈 공자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형도 일찍 죽어 가계를 잇게 되는데, 모친과 형의 식구를 거느리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0세를 전후해 벌써 그의 총명함과 박학함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위 문장에서 처럼 15세를 전후하여 이미 학문으로 이름을 떨쳐 노나라의 대부였던 맹희자는 유언으로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도록 당부한다. 이때가 공자 나이 17세가 되던 때이다.

19세 되던 해에 혼인하여 당시 노나라 귀족인 계씨의 창고지기와 목장관리의 천직을 맡는다. 비록 천직이었지만 공자가 그 일을 맡고 나서 일처리가 공평해지고 가축들이 번성하였다. 공자는 승진을 거듭하여 감독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30세, 세상에 우뚝 서다

24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상을 핑계로 공직을 사임하고 후진 양성에 나선다. 이미 공자는 많은 제자를 거느렸으며, 제나라의 경공이 공자의 명성을 듣고 초청할 정도로 공자의 명성은 나라 안팎으로 유명해졌다.

이무렵 노나라에서는 하극상이 벌어져 노나라의 군주는 제나라로 망명하게 되었고, 공자도 군주를 따라 제나라로 간다. 공자 나이 35세였다. 제나라로 간 공자는 제나라의 중신 고소자의 가신이 된다. 공자가 제나라로 간 이유 중 하나는 옛날 순임금의 예악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때 제나라에서 순임금 시대의 악곡 연주를 듣고 석 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몰랐다 한다.

제나라 경공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중신들의 반대로 등용되지 못한 공자는 다시 노나라로 귀국한다. 그리고 시·서·예· 악 등을 연구하여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힘썼으며 이때 제자가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오십 지천명, 육십 이순

50대 초반 노나라의 주요 요직에 오른 공자는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삼환 씨의 세력을 약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오히려 공자의 행동은 삼환씨를 비롯한 관리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공자가 55세때, 제나라는 노나라의 기강을 흩뜨리기 위해 80여 명에 이르는 여성가무단을 보낸다. 노나라의 최고권력자인 계환자, 재상과 왕까지 퇴폐문화에 빠지자 공자는 미련없이 노나라를 떠난다. 이때가 공자가 56세가 되던 해이다.

이후 공자는 제자인 자로, 자공, 안회 등과 함께 천하를 주유한다. 제.송.위.진.채.조 등의 나라를 다니면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강론하였지만 부국강병만을 쫓는 제후들은 공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공자 또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13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그럴수록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뜻은 더욱 강해진다. 공자는 13년 만에 고국 노나라로 돌아와 《시경》《서경》《역경》《예기》《악기》《춘추》를 재편찬하며 다시 후진 양성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외아들 이를 잃고, 또 1년 뒤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를 잃게 된다. 그리고 73세에 되던 해, 아끼던 제자 자로가 죽은지 6개월만에 세상을 구하겠다는 꿈을 뒤로한체 공자는 눈을 감는다.

스스로 하늘이 보낸, 시대를 구원할 성인이라 믿었던 공자는 가슴속에 품은 꿈을 다 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꿈은 후학들에게 전해져 지금까지 동양 철학과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