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소매를 붙들고 산길이 바지를 붙드니 한양길이 너무나 멀다
산 꼭대기 올라 발을 들고 내다봐도 산 넘에 또 산이 있구나.
조선왕조 왕중에서 가장 불행했던 임금 단종이 머물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 삼면이 강물이라 배를 타지 않으면 빠져 나올 수 없고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산 속에 있는 섬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몇 걸음 안되어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급격히 깊어지는 깊은 강물이었다.
배를 타고 방향을 돌리자마자 닿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단종에게는 천리만리 먼 거리였겠지.
하늘을 찌를듯한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초가집과 소박한 기와집이 소나무 그림자와 정막감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원래 머물던 어가는 전소되고 2000년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시종의 보고를 받는 단종의 모습을 한 인형에게서조차 슬픔이 전해진다.
마당을 둘러싼 담장 밖에는 높디 높은 소나무중 몇 그루가 단종이 머물던 어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통곡하는 신하의 모습을 연상케해 감동을 준다.
비운의 어린 임금의 용안을 직접 볼 수 없어 머리를 조아린것인지 아니면 매일 밤 두려움과 그리움에 떨었을 어린애가 가여워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단종의 울음소리를 듣고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는 갈라진 관음송에 귀를 대면 피울음소리가 들릴것만 같다.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올랐다는 노산대, 청령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이곳에서는 까치발을 해도 보이는 것은 산 뿐이다.
자라목처럼 목을 빼고 산 넘어 한양을 보느라 애간장을 태웠을 단종의 마음이 느껴지는 자리라 함부로 밟지도 못하겠다.
첩첩산중이라 찾는 이도 없고 혹여 찾아왔다해도 강물이 있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청령포, 이곳은 산세가 험해 날이 빨리 저문다.
소식을 전할 수도 없고 소식을 전해주는 이도 없는 이곳에서 단종는 어둠 속 죽음의 공포까지 견디며 하루를 천 년처럼 보냈으리라.
천 년같은 하루를 지옥처럼 사는것보다 오히려 죽음을 보았을 때 홀가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거운 한을 강물에 흘려보내고, 산 위에 걸쳐 놓고 훨훨 한양으로 날아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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