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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Interest

흑피옥의 미스터리 - 초고대문명의 흔적인가?

 

1만년 전에 시작된 신석기 문화의 특징은 인류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정착·촌락 생활이 가능해 졌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문명 형성의 기틀이 되었다. 신석기 문화는 BC.10세기 경에 시작된 청동기 문화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 중 BC 6500년부터 5000년경에 만주지역에서 홍산문화라는 고대 문화가 있었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옥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은 게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옥저룡이라고 부르는 유물이 대표적이다.

 

 

 

C자 모양의 녹색 옥기는 돼지 머리에 용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옥저룡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홍산문화의 발견으로 그 동안 황화문명을 중국 문명의 시초로 생각해 왔던 중국은 크게 당황하였으며, 중국 역사학자들 사이에는 신석기와 청동기 사이에 옥기시대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홍화문화에 대하여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며, 홍화문화의 옥저룡과 비슷한 형태이기도 하나 더 정교한 형태를 가진 흑피옥이란 미스터리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흑피옥의 정체

흑피옥이란 옥으로 만든 조각품에 검은 칠을 한 것으로 조각품의 모양은 돼지머리에 용의 몸을 한 C자 모양의 옥저룡과 사람 형상이 합쳐져 있다.

흑피옥이 발견된 지점은 중국 동북부 지역이며 그 수는 수천 점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식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학계에서는 정식 역사 유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흑피옥을 두고 1만년 이전의 초 고대문명의 흔적이라거나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이에 대한 과학적 확인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단지 1만 년 전의 기술로는 단단한 옥을 깍아 모양을 만든 뒤 검은 물질로 매끈하게 덮은 흑피옥을 만든다는 것과 1만 년 이상 이전이면 신석기 농업 문명이 시작하던 때로 아직 문자로 기록된 역사조차도 없던 시기이기에 이런 황당한 주장이 있는 것이다.     

 

 

흑피옥이 만들어 진 시기

그러면 흑피옥의 제작 시기가 1만 년 이상이 되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흑피옥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한 시도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2006 11월에 있었으며 흑피옥 표면의 염료를 이용해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약 1 4300년 전의 유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흑피옥이 초고대문명이라는 발상의 근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도는 2008 1월 국내 흑피옥 연구 전문가인 한국항공대 우상하교수가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대에 의뢰해 실시되었다. 그러나 1차 시도 때와는 달리 기존의 결과는 실제보다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1 4300년 전보다는 가까운 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중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측은 흑피옥이 정식 발굴되기 전에는 흑피옥에 대한 측정 연대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하였다. 따라서 흑피옥에 대한 미스터리는 계속 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중국에는 흑피옥을 연구하는 학자가 많지 않다. 그리고 흑피옥이 정식적으로 발굴된 적이 없기에 초고대문명이라는 발상은 허황된 주장이라는 취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