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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우러진 조선왕릉, 동쪽의 아홉릉 동구릉을 찾아가다(2)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왕릉, 동쪽의 아홉릉 동구릉을 찾아가다(2)

 

지난 글 '동구릉에서 만난 세계유산 조선왕릉'[링크]에서는 동구릉의 아홉개 왕릉 중 수릉, 현릉, 건원릉을 둘러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계속해서 나머지 왕릉인 목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을 만나보겠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왕릉의 봉분(능침) 부분에 대한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 가까이서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 봉분의 모습은 올해 초에 연재한 조선왕릉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앞서 왕릉의 봉분은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9기의 왕릉 중 유일하게 접근이 허용된 데가 목릉이다. 목릉은 조선 제 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이다. 능의 위치는 선조가 가장 왼쪽에 있고 그 중간에 원비인 의인왕후, 그리고 오른쪽에 인목왕후의 능이 있다. (능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원비(인의왕후)가 질투하여 선조와 계비(인목왕후)의 능이 서로 쳐다볼 수 없게 염원하여, 실제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서로의 능을 바라볼 수 없게 가려져 있다. 아래 두번째 사진이 인목왕후 능인데 옆에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선조의 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래 위사진은 원비인 의인왕후의 능으로 선조의 능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건원릉에서 목릉에 이르는 길에는 서어나무 군락지가 있다. 조선왕릉은 자연속에 자리잡고 있어 왕릉을 따라 산책하는 동안에 피톤치드에 흠뻑 취할거 같다. 

 

 

다음으로 찾은 휘릉은 왕이 아닌 왕비의 릉이다.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1649년 인조가 승하하자 26세에 대비가 되었고 효종, 현종, 숙종 대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으나 인조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했다. 오랜기간 왕실의 어른으로 있었기 때문에 동구릉의 좋은 위치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거 같다.

 

영조는 조선 제 21대 임금으로 항상 사도세자, 정조를 함께 생각나게 하는 왕이다. 원릉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조선 최장수 왕으로도 보령 83세에 이르며 장장 52년간 왕의 자리에 있었다.  아래 사진 신도비의 비문에도 그 내용이 적혀있다.

 

원릉의 정자각에 이르는 신도와 어도로 이루어진 참도의 모습이다. 높은 쪽이 죽은 왕이 걷는 신도이고, 낮은 쪽이 살아있는 왕이 걷는 어도이다. 정자각에 오르는 돌계단도 차이가 있다. 살아있는 지존인 왕이 홀대받는 유일한 장소이다. 

 

경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이다. 즉 하나의 곡정 안에 세 기의 봉분이 들어서 있다. 조선 제24대 헌종,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이 함께 있다. 삼연릉의 모습이 궁금하조선왕릉 이야기[링크]에 가면 사진이 있다. 아래 사진에도 삼연릉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하여튼 헌종은 원비와 계비의 사이가 좋았나 보다. 목릉은 세사람이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 반목하는데 말이다.  

 

혜릉도 왕비의 능이다. 조선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이다. 단의왕후는 1696년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추봉되었다. 

 

혜릉까지가 여덟번째 능이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하나의 능은 누구의 능일까?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우리가 잘 아는 명성왕후가 아닌 현종의 왕비인 명성왕후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숭릉은 관람제한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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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은 조선왕릉과 어우러진 자연때문일게다. 입구의 홍살문을 벗어나면 또다시 바쁜 인간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