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경부터 잦은 기침으로 동네 병원을 다니시던 친정엄마가 차도가 보이지 않자 소견서를 가지고 큰병원을 찾으니 입원해서 검사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1주일 가량 입원을 하셨었다.
워낙 건강체질이셨던 분이고 근래 10여년간 감기를 앓았을 뿐 입원한 적이 없어서 행여나 하는 마음에 본인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부른 이유는
폐에 이상징후가 보이니 정밀검사를 해 보자는 선생님 말씀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시는 친정엄마를 보며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는 검사를 하는거지 이상한 게 아니니 미리 걱정하지 맙시다라며 나름 안심을 시켜 드렸지만 속으론 복잡한 마음이었다.
낯선 연두빛 환자복을 입고 침대 위에 앉은 작은 할머니가 엄마인데 왜 이리 더 작아 보이는지....입맛을 잃어 식사를 잘 못하니 얼굴이며 목, 그리고 손과 팔목들이 여느때보다 앙상하니 말라보이고 흰머리와 뿌연 환자복은 얼굴의 생기를 더 떨어뜨린다.
입맛을 돌게 하려고 이것저것 드려도 통 시원찮아 기운은 떨어졌지만 다행히 기침은 잦아드는 듯 했다. 어느 날 이야기를 하던 중에 퇴원하면 집으로 한번 오라고 하시며 줄게 있다고 하신다. 엄마가 아끼던 옷과 악세사리 몇가지를 주겠노라 하시길래 이유를 여쭈니
"이제 그런거 필요없을거 같아서.. 내가 건강할 때 줘야지 더 병들기 전에...."
무슨 뜻인지 알것 같아서 울컥한 마음에
"엄마! 더 쓰다가 줘, 괜히 지금 줬다가 다시 뺏어 가지 말고"
나중에 줘도 돼요
다행히 검사결과는 전염성이 없는 가벼운 폐결핵으로 나왔고 퇴원하고 약만 잘 먹으면 된다고 한다. 동기간도 많고 종교 모임도 오래 해 오셨던 분이라 걱정해주고 위로해 주는 이들이 많았다.
퇴원 후 명절이 다가와 친정에 가니 엄마는 병원에서 했던 말을 상기하며 옷장 문을 여시길래 얼른 닫으며
"어떤거 주는지 알았으니까 나중에 나중에 내가 달라고 하면 그 때 줘. 지금은 안 가져갈래."
나이가 있어서 그런 걸까? 병원에서 괜찮다고 하는데도 차도가 더디다.
자신도 혹시 다른 병이 있나 의심을 하시며 의욕 저하에 우울증도 보이시고. 여느 땐 살짝 농담만해도 숨이 넘어가게 웃음이 많았는데 이젠 잘 웃지도 않으신다.
얼른 봄이 와야 봄볕을 쬐러 나가실텐데 엄동설한처럼 매서운 입춘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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