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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스승의 날 기억나는 클래식 기타 연주가 일품이셨던 국어선생님

 

지금은 학교들이 평지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엔 왜 그리 오르막길 끝에 있는 학교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안그래도 무거운 가방에 몸이 천근만근인데 아침부터 등교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 아닌 등산을 해야했었다. 

여타 학교와 다를건 없었지만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교문에서부터 학교 건물까지 나무 터널이 멋지게 조성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여학생들 정서에 맞도록 조경이 잘 되어 있던 학교였다.

 

 

스승의 날 기억나는 두 선생님 

중학교 2학년 반배정이 있던 날, 우리 학교에 두 분의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국어와 사회 과목 선생님이셨는데 국어과목은 남자선생님이시고 사회과목은 여자선생님이셨다. 키가 크고 외모가 화려하셨던 여자 선생님은 우리반 담임이 되셨고 키 작고 우울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은 나의 단짝 친구의 담임이 되셨다.

 

당시 친구의 집이 학교 가는 길에 있어 나는 매일 친구 집으로 가서 친구를 부른 다음 수다를 떨며 등교를 했고 수업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재잘거리며 집에 같이 오곤 했다.

그런데  친구네 반이 수업 후 2시간씩 자습을 하라는 담임의 일반적인 결정으로 모두 남아 공부를 하게 되었고 친구는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담임한테 당돌한 저항을 하였다. 하지만 결정이 번복되지 않아 친구네 반이 공부하는 동안 나는 2시간을 혼자 기다려야 했다.

 

 

클래식 기타 연주가 일품이셨던 국어선생님

우리 교실에서 밖을 보다가 친구네 담임 선생님이 나무 사이로 걷고 계신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손에는 책 한권을 다른 손에는 기타를 들고 계셨다. 나무 아래 의자에 앉으시더니 기타연주를 시작했는데 거리가 멀어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감성적인 선생님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클래식 기타였는데 선생님의 연주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기타 치는 선생님의 모습에 빠져버리니 그 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친구의 험담에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교내 행사에서 애절한 클래식 기타 소리는 여린 중학교 여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키 작고 우울해 보였던 국어 선생님은 단연 인기 1순위가 되셨다. 클래식 기타반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몰려 들었지만 나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친구는 여전히 담임을 싫어했고 친구를 버리고(?) 선생님한테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 클래식 기타반에 가고 싶었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친구에게 말하며 '넌 나의 첫사랑의 훼방꾼이었어' 라고 말하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반응을 보이더니 '내가 너의 짝사랑을 더 힘들게 하였구나, 미안하다' 라고 말해서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선생님이 나무 숲 벤취에 앉아 클래식 기타를 치던 계절이 이맘때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