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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레테, 망각의 강과 기억을 지우는 방법

 

정우성과 김태희 주연의 '중천'이라는 환타지 무협영화를 보면 죽은 영혼들이 49일간 머무는 곳이 나온다. 그곳을 '중천'이라 부르는데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정우성은 죽지 않고 중천에 들어가게 되었다. 죽은 영혼들 틈에 끼여 그가 본 것은 이승에서의 기억을 없애주는 강물과 술잔이었다. 이승에서 입고 온 옷을 벗고 강물에 몸을 씻은 후 술을 한 잔 마시면 이승의 기억이 말끔히 사라지니 이승에의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레테, 망각의 강

그리스 신화에는 죽은 영혼들이 건너야하는 강이 다섯 개 있다고 하였다.

첫번째가 고통의 강인데 이곳은 흐르지 않는 늪으로 죽음에서 오는 고통을 천천히 씻어 가며 건넌다. 두 번째는 비탄과 통곡의 강으로 차가운 강물에 시름과 비탄을 흘려 보낸다. 세번째 강은 불의 강으로 남은 감정을 불태워 버린다. 네번째 강은 두려움과 약속의 강으로 강의 위엄있는 모습에 신들조차 두려워 했다는 강이다.

 

 

그 중 마지막 강이 '레테'인데 이 강은 잠의 신 힙노스의 산 속 동굴 주변을 고요히 흐르기 때문에 침묵의 강이라고도 부른다. 죽은 영혼들은 레테를 건너는 동안 강물을 마시고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영혼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생각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망각의 강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죽어서 기억이 소멸되기를 바랬던 것은 인지상정이었나 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인생은 고(苦)'라는 말이 떠 오른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고통의 기억 하나 없이 웃으며 죽는 이보다 그렇치 못한 이들이 더 많았음이다.  

 

 

기억을 지우는 방법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기억이다. 기억은 사람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재생산해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나갈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새겨진 부정적인 기억으로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일본 후지타 보건위생대 연구팀에 의하면 뇌에서 망각이 일어나는 원인은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면서 기존 신경세포는 방해를 받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그렇다면 좋은 기억은 그대로 두고 나쁜 기억만 떼어서 없앨 수는 없을까?  연구결과를 따르자면 원하는 부분의 기억소멸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신은 인간의 기억용량을 정해 넘치는 것은 작고 흐려지게 만들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신의 축복'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기억들이 있고 잊으면 안되는 기억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