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풍수지리로 본 청계천은 돈이 모이는 금융의 중심지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도읍지로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정하였다. 그 이유는 앞으로 한강이 흐르고 뒤로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어 명당의 요소인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곳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도전과 무학대사가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최종적으로 한양을 추천하였던 이유 중에는 아마도 한양을 가로 지르는 청계천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풍수지리로 본 청계천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에게 물은 ‘돈’을 뜻하기도 한다. 교통 수단과 도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수로를 이용한 교역이 훨씬 편리했음으로 강이나 하천을 끼고 상권이 발달하고 활발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물이 흐르듯 돈이 흐르고 물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모인다고들 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지금의 청계천 주변에 유독 금융가가 많다는 이유가 설명될 수도 있겠다.

청계천은 북악산과 인왕산 그리고 목멱산(지금의 남산)의 물들이 모여서 동쪽 방향으로 흐른다. 보통 우리나라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청계천은 지형상의 이유로 서에서 동으로 물이 흐르는 곳이다.

 

 

 

범상치 않은 세 산의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청계천이니 그 곳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중은행들이 들어선 건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모양새이다. 지금이야 여의도가 국제 금융도시로서 청계천보다 훨씬 규모가 크지만 이전까지는 사채를 포함한 모든 금융의 중심지가 청계천 주변 명동일대였다.

 

 

청계천은 돈이 모이는 금융의 중심지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가보면 좌우로 종로와 을지로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종로는 운종가라해서 조선 팔도의 특산물들이 모여 들던 곳인데 없는거 빼고 다 있다는 운종가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한양 상권의 중심 거리였다고 한다.

지금은 귀금속 상가들이 줄지어 섰지만 한때는 명동과 더불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크게 형성된 곳이었다.

청계천 우측에는 을지로가 있는데 이곳은 인쇄업종이 몰려 있다. 대표적인 언론인 신문사들과 각종 출판사들 역시 청계천 주변에 있었으니 그에 필요한 인쇄업 역시 청계천을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을지로 쪽으로는 책방들이 길게 성업 했었다. 지금은 인쇄업도 책방도 사양 산업이 되어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다.

 

 

청계천 옆 동네 - 을지로와 충무로

을지로라는 도로명과 충무로는 중국에게 강했던 을지문덕 장군과 일본에게 강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충무로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신마찌’라 불리던 곳이었고 을지로는 중국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차이나타운 이었다.

광복 후 일본과 중국의 기운을 없애고자 충무로와 을지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재밌는 것은 이순신 장군과 을지문덕 장군 두 분은 물로서 적을 섬멸시켰다.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청계천의 기운이 합쳐져 일본과 중국의 기를 다시 한 번 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도 하겠다.

 

<1904년 청계천 모습>

 

청계천 주변이 지금은 산책길로 조성되어 서울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도심의 뜨거운 열기를 낮춰 쾌적함까지 주는 도심 속 휴식의 명소가 되고 있으며 청계광장은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 이어 국민들간 소통의 장소로도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