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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동서양 귀족들의 근친결혼 풍습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친결혼의 풍습은 어디에나 있었으며 지금도 풍습을 이어가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근친결혼이 생물학적으로나 사회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음을 알면서도 인류의 역사 속에는 그들만의 결혼, 근친결혼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속의 근친결혼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의 계보를 따라가보면 아마도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가계도가 그려질 것이다. 신화 속 인물들은 간혹 인간과의 결합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신들이 사촌이나 육촌은 물론 남매, 심지어 부녀간에도 결혼을 하였고 자식을 낳았다.

 

<오케아누스와 테튀스>

 

어차피 인간이 아닌 신이므로 그들끼리의 결혼을 인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리한 해석을 하자면 그래서 서양 신화의 인물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치 못한 이들도 있었던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의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때 왕족들도 사촌이나 육촌간의 근친결혼 풍습이 있었다. 특히 신라시대때는 골품제라는 신분제도를 만들어 같은 신분끼리의 교류와 결속을 위해 결혼을 하였다. 법흥왕은 자신의 딸을 동생에게 시집보내고 김유신은 여동생과 김춘추 사이에서 낳은 딸, 즉 조카를 부인으로 맞았다.

고려의 4대왕 광종의 부인인 대목왕후 황보씨는 모두 왕건의 자식이다. 어머니가 다르다지만 남매관계이다. 두번째 부인은 형의 딸인 조카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엄연한 근친결혼이었지만 고려시대때 왕족의 근친결혼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오랫동안 근친결혼 풍습이 이어졌었다.

 

 

근친결혼을 한 이유는

신라시대나 고려시대때 왕족끼리의 근친결혼이 성하였던 이유는 취약한 왕권 강화와 유지를 위한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처음엔 지방 호족 세력들을 규합하기 위한 전략적 결혼으로 시작했으나 이후엔 불필요한 세력화산을 막기 위해 그들만의 결혼을 진행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29명의 부인을 두고 34명의 자녀을 낳았다고 하는데 그 자녀들이 결혼해 또 자식을 낳았다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몇십명의 친족관계는 아닌 듯 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당시 여자들은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물과 재산을 분배받아 가지고 갈 수 있었으니 왕족들이 서로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했다고도 한다. 서양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위와 재산을 지키기 위한  권력 유지를 위해  친족간의 결혼을 이용한 것이다.

 

 

근친결혼의 피해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근친결혼을 방지하고자 제도와 풍습을 만들었다. 근친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근친결혼 시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생식기의 기능저하와 기형아 출산, 그리고 평균이하의 수명 때문이다.

실제로 서양의 경우나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근친결혼을 했던 당시의 왕족이나 귀족의 경우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고 출산한 자녀의 숫자도 적으며 질병이나 기형아를 낳은 경우가 일반인 집단에 비해 훨씬 높은 출현비율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도 사촌과 근친결혼을 하였는데 다윈의 10명의 자녀중 3명은 10세 이전에 사망하였고 6명이 결혼하였으나 3명만 자녀를 둘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윈은 자녀들의 불행이 자신의 결혼때문이 아닐까 고심했었다고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전체는 한 가지에서 뿌리내린 친족으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나 동물들, 식물들까지도 혈통으로 너무 가까운 사이끼리 결합하면 다음 세대에 나쁜 결과를 초래해 세대가 끊어질 수도 있으니 근친결혼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