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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정조의 효심과 실학정신이 담긴 수원화성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가까이에 모셔 놓고 자주 찾아 뵈었던 수원은 화성과 더불어 효의 상징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의 소재로 가장 많이 알려진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삶과 아비의 비극을 목격해야만 했던 어린 세자(정조)의 가슴앓이가 200년이 지난 수원화성에 아직도 남아 있는 듯 하다.

 

 

 

 

 

수원화성의 둘레는 약4.7km이며 북쪽으로 정문인 장안문을 비롯해 동으로 창룡문, 서쪽으로 화서문, 남쪽으로 팔달문을 두었다.

정문을 장안문으로 한 것은 한양에서 내려오는 정조가 처음 만나는 문이기 때문이다.  

 

<정조가 공사하는 백성에게 술을 권하는 동상>

 

 

장안문에서 동쪽 방향으로 북수문인 화홍문(무지개문)과 함께 동북각루가 보인다.

하지만 망을 보는 동북각루보다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아름다운 방화수류정과 용연이 발길을 붙잡는다. 

 

 

 

 

 

 

창룡문은 청룡을 뜻하며 풍수지리상 좌청룡으로 동쪽을 의미한다고 한다.

성곽길을 통해 창룡문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묘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적군의 침입을 연기와 불꽃으로 알려주는 봉수대가 있는 봉돈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굴뚝을 벽돌로 쌓은 것은 화성이 처음이라고 한다.

 

 

 

 

 

팔달문은 남쪽 문으로 팔달산에서 이름을 따 왔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수원화성의 건물 중 가장 화려하며 조선 후기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춘 중요한 성문이다.

 

 

 

 

팔달산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따라 숨이 찰 때쯤 서장대를 만나게 된다.

서장대에 오르면 화성 성괄 일대는 물론 화성 근방 백리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정조가 이곳에서 직접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화서문은 서쪽 문으로 동쪽의 창룡문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성문 앞에 팔달문처럼 옹성을 쌓았는데 한쪽 끝은 붙이지 않고 길을 터 놨다.

 

 

 

 

 

화서문을 지나면 내리막길로 시내를 내려다보며 처음 줄발지인 장안문으로 향하게 된다.

두 시간 가량 오르락 내리락 걸을 수 있는 수원화성 성곽길을 둘러 보았다.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실학정신과 서양의 과학기술이 탄생시킨 수원화성은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군사적인 방어력과 백성들의 평안한 생활까지 도모한 조선 후기 최고의 건축물이다.

이에 유네스코는 1997년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