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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한국인에게 밥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어르신 식사는 하셨습니까?”

동네 어르신을 만나면 흔하게 쓰는 인사말 중 하나이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에는 끼니를 거르지 않았는지에 대한 궁금함과 간밤엔 무탈하셨는지 걱정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끼니를 챙기는 날보다 거르는 날이 많았으니 밥심으로 견뎌야 하는 어르신들의 식사여부를 챙기는 것은 아랫사람의 당연한 도리였다고 하겠다.

 

쌀·보리 등의 곡물을 솥에 안친 뒤 물을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게 끓여 익힌 음식으로 한국인들의 주식인 ''은 주식으로서 생명유지의 역할을 넘어선 다중적인 이미지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밥에 대한 긍정적 의미

어느 드라마에서 신혼의 부부가 사랑싸움을 했다. 남편은 어정쩡한 걸음으로 부인 곁으로 가서 , 배고파라고 말한다. 부인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기더니 웃고야 만다. 화가 풀린 것이다.

남편은 밥을 먹고 싶었던 게 아니라 화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를 무섭게 훈육하던 엄마가 따끈한 밥을 해 놓고 밥 먹자라고 말하면 그건 용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혹은 먼 길에서 돌아 온 사람에게 새 밥을 해 먹이는 우리네 정서는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만남에 대한 반가움과 고마움 등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부모의 속을 썩이던 자식이 돌아 왔을 때 부모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밥은 먹었냐?” 물어보는 것은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담고 있다.

병문안을 갔을 때 환자의 쾌유를 빌며 건네는 말은 밥을 잘 먹어야 해라는 말이다. 병마와 싸우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므로 어찌 보면 환자에게 밥은 제일 중요한 처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랫동안 헤어져야 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밥 잘 먹고 있으라는 당부를 건 낸다. 기다림 속에 건강을 잃지 않기를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다.

 

 

밥에 대한 부정적 의미

하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연쇄 살인범으로 심증을 굳힌 박해일을 잡고 나서 했던 말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은 인면수심의 살인범에게 너는 밥을 먹을 가치도 없는 인간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간혹 드라마를 보면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황당한 상황에 놓여 모두들 정신이 없는데도 밥을 잘 먹는 이에게 너는 밥이 넘어가냐?”라는 말은 상대에 대한 비하와 실망감이 담겨 있는 것처럼 밥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났으나 다시 급히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아쉬운 마음에 다음에 꼭 밥 한 번 같이 먹자라는 말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빈말 중 하나라고 하지만 빈말일지언정 밥을 같이 먹고 싶다는 표현은 내가 그에게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아 스스로 작은 위안을 삼는 게 인간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평생 먹는  에는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훈훈함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