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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Interest

클레오파트라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칼의 말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뛰어났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파스칼의 말처럼 미인은 아니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클레오파트라가의 초상이 새겨진 고대 화폐나 조각상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실제는 살이 찐 큰 얼굴에 매부리코였으며 다소 남성적인 얼굴이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일생

 

클레오파트라가 미인이든 아니든 그녀는 역사 속에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여왕으로 유명하다.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18세 되던 해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왕좌에서 물러나는 굴욕을 맛본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8년 이집트에 온 로마제국의 지배자 카이사르와 협상을 통해 다시 왕좌에 오른다. 이때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는 20세 초반이었지만 50대의 카이사르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가지 유혹을 하였고 그 비법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카이사르가 암살로 죽자 기원전 42년 로마의 차기 지배자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3년 후 안토니우스와 결혼한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최대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평화로운 시간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영원하지 못했다.

 

기원전 31년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토비아누스가 두 사람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그녀의 화려한 삶도 또 다시 회오리에 휘말리며 다음해인 기원전 30,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클레오파트라 죽음의 미스터리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그녀의 명성만큼 극적이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클레오파트라는 화려한 침대에 누운 채 자살을 위해 풀어놓은 독사에 물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클레오파트라는 북아프리카 독사에 물려 죽었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죽음을 그린 옛 그림에도 클레오파트라를 무는 독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뱀이 아닌 독약을 이용해 자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독일 트리어대학의 고대사학자 크리스토프 새퍼 교수의 의견이다.

 

이는 코브라와 같은 독사가 인체에 치명적이지만 단 시간에 죽음을 이르게 하지 못한다느 이유 때문이다. 독사에 물릴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수 시간이 걸리고 눈을 포함해 신체의 여러 부분이 마비된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특별한 고통이나 상처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었다는 기록과는 맞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실은 죽음에 대한 기록도 확실하지는 않다.

 

 

또 다른 주장 중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 놓고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깍아내리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는 설이다.

 

이래저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한 주장은 모두가 가설이며 확실한 증거가 없는 미스터리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