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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40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 - 종이드레스

 

40년 전 크리스마스 선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니던 성당에서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성탄절에 무대에 올릴 연극을 준비하던차에 나도 작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제목은 '성냥팔이 소녀'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성냥팔이 소녀에게 나타나 잠깐의 행복을 주는 여러 요정중 하나가 내 역할이었다.

학교가 끝나거나 주말 미사가 끝나고 나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극연습에 참여 하였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내가 설레였던 이유는 요정역할에게는 드레스를 입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나마 예쁜 드레스를 입게 될까? 얼굴에 예쁜 화장도 해 주고 귀걸이도 해 주겠지? 이것이 나의 큰 관심사였다. 

연습은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고작 몇 마디가 전부인 대사를 외우며 매일매일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안녕! 나는 케이크 요정이야"

쓰러진 성냥팔이 소녀 주위로 원을 그리며 나타나 객석을 향해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제자리에서 한바퀴 돈 다음 소녀 주위로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무대 밖으로 나가는게 우리 요정들의 역할이었다.

그러니 무대 위의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매번 맛있는 간식거리가 주어지고 친구들과의 수다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드디어! 연극 발표날이자 요정의 옷이 나오는 날, 대학생 언니가 하얀 타이즈에 하얀 티셔츠를 집에서 입고 오라고 해서 엄마가 새로 사 준 타이즈와 티셔츠를 입고 성당에 갔다.

 

 

종이드레스

아직 요정 드레스는 도착하지 않아서 우리는 겨울 외투를 살짝 걸치고 기다렸다. 그리고 드레스가 왔다.

하.... 언니들이 가져 온 드레스는 내 예상을 빗나가 버렸다.

대학생 언니들이 만든 드레스는 '종이 드레스'였다. 한지인지 색습자지인지 모르지만 얇은 종이를 몇 겹으로 겹쳐서 발레복처럼 생긴 치마를 만들고 아슬아슬하게 어깨끈을 붙인 종이 드레스를 조심조심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머리엔 마분지에 케이크를 그린 초라해 보이는 머리띠를 씌여 주며 옷이든 머리띠든 종이라 찢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 게다가 화장도 해주지 않았고 귀걸이등 장신구도 없었다.

 

 

헉! 실망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다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큰 창피를 당할수 있다 생각하니 추운 겨울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종이드레스가 신기해서 만져보기도 하고 웃으며 지나가는데 너무나 창피했다. 아직 무대에 오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어딘가 기대고 싶지만 접시처럼 펼쳐진 치마때문에 꼼짝없이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서 있어야만 했다.  

조금 움직이기라도 하면 버석거리는 소리에 행여 옷이 더 구겨지거나 찢어질까 노심초사하였다.

번개처럼 무대를 내려와 종이드레스를 벗으니 마치 갑옷을 벗은듯 가볍고 시원했다. 그리고 실망감과 아쉬움이 몰려 오며 대학생 언니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동화에 나오는 공주님이 입는 길고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혀주지.....

40년이 지나도록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그 때 그 종이드레스가 어제 본것 마냥 또렷한 기억으로 남으며 나를 기분좋게 한다.  

얼굴도 모르는 언니들이 만들어 준 종이드레스가 내게는 영원히 기억 될 크리스마스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