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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Book

나도향의 '여이발사' - 그럴줄 알았지

 

나도향의 '여이발사'

입던 네마끼(자리옷)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 50전을 받아 쥔 나는 길거리 유리창에 비춰진 몰골을 보며 이발할 시기임을 알아 챘다.

비싼 요금을 주어야하는 이발소를 지나 이발 비용이 20전인 허름한 이발소를 찾아 들어가 모자를 벗고 교의에 앉아 주인장에게 머리를 맡기었다. 

머리를 자르고 남은 30전은 친구에게 돈 꾸러 갈 차비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머리를 다 잘랐을 때쯤 주인장의 아내인듯한 젊은 여자가 나와 면도를 시작했다.

스믈 서넛쯤 되 보이는 그녀는 목소리로 나를 사로잡더니 얼굴도 몸매도 매력적이어서 차마 눈을 뜨고 쳐다볼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웃음기를 보였다. 그녀의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이발 비용으로 50전을 주고 거스름 돈을 사양한체 달아나듯 문을 나섰다. 

더위에 모자를 벗고 머리를 만져 본 순간 아차 싶었다. 어릴 때 앓았던 뜸 자국이 손끝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럴줄 알았지

전당포에 웃을 맡기고 받은 돈 50전중 20전을 주고 이발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때문이기도 하지만 친구에게 돈을 꾸러 가기 위해서였다.

전차 비용으로 20전을 주고 남은 10전으로 목욕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보고는 '나'는 이성을 잃어 버렸다. 그녀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몸매도 나무랄데가 없어 그녀가 가까이에서 면도를 해 주는 것은 '나'를 황홀지경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순수한건지 어리석은건지 모를 '나'의 마음은 완벽한 미모의 그녀를 찬양하더니 급기야 그녀의 미소에 가진 돈 전부를 아낌없이 내어줄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거스름돈을 마다하고 점잖은척 나가는 빈털털이의 허세는 무슨 모양새인지..... 그녀의 미소가 뒷통수에 있는 뜸자국(땜빵)때문이란걸 알아채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어수룩한 주인공을 보며 한 마디 한다.

'내가 그럴줄 알았지'

 

 

나도향의 작품은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로 유명한 나도향의 작품이다.

 

 

나도향은 주로 치정을 소재로 한 남녀관계의 설정으로 그가 바라 본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발표했다.

혹자는 그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창부)들이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닌 쾌락추구를 위한 애정행각을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들여다보니 일면 그런 면이 있어 흥미로웠다.

즉, '지적인 창부'란 돈을 밝히는 지식인들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코믹스러운 반전을 보이는 '여이발사'는 밀려 드는 무분별한 서양 문화에 물들어 속빈 강정이 되어 가는 현실을 꼬집은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