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 '두 노인'

예리세이는 각자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가족들을 둔 가난한 농부였고 예핌은 가족을 포함 누구도 잘 믿지 못하는 부자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예핌과 예리세이 두 노인은 성지순례길을 같이 떠나기로 했지만 예핌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예리세이는 예핌에게 재촉하여 드디어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는데 도중에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지나다 죽음을 목전에 둔 가족을 지나칠수 없던 예리세이는 마을에 남고 예핌 혼자 성지순례길을 떠났다.

예리세이는 환자를 돌보고 굶주린 아이에게 빵을 주며 그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다가 시일을 놓쳐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핌은 혼자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리세이가 돌보아 주었던 가족들이 건강해져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해 졌다.  

돌아온 예핌을 반갑게 맞이한 예리세이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친구의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었지만 예핌은 예리세이의 환한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최선?

부자이지만 조급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면이 강한 예핌과 가난하지만 느긋하고 안정적이며 긍정적인 면이 강한 예리세이의 모습은 작가 톨스토이가 의도적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하필 부자를 부정적으로 가난한자를 긍정적으로 보여 준 이유와 강한 종교적인 색채가 일부 독자들에게 부담감으로 비춰질수 있겠지만 누가 더 정의롭고 신앙이 깊은가는 빼고 두 노인 각각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

종교인에게 가장 성스러운 행사인 성지순례 길에 두 노인의 앞에 걸림돌처럼 나타난 죽음을 앞 둔 가족들의 모습에 이들의 판단은 또 정반대였다.

부자 노인 예핌은 성지순례를 위해 길을 떠났으며 가난한 노인 예리세이는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이들 곁에 남았다. 

예리세이가 성지순례길을 처음부터 포기하려 했던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성지순례길을 재촉했던 예리세이는 성지순례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느님이 바라시는대로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본 예리세이와 하느님의 행적을 눈과 마음에 담고 돌아와 예리세이를 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예핌, 우리는 누구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에서 천사 미하엘이 답을 알아야 할 질문 세 가지가 있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나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 작품에서 특정 종교를 배제하면 인간의 내면과 외면엔 모두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에 대한 사랑(연민이어도 좋을)이 중요함을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세상, 우리가 보기에도 좋으니 신이 보신다해도 좋지 않겠는가.

 


Posted by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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