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positorium/History

한글에 대한 쓸데없는 궁금증???


지금 방송되는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한 내용이라고 들었다.
아직 한번도 본적은 없는데 들리는 말이 한글창제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모양이다.

어떤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세종은 굳이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만들었을까?

당시는 조선초라 한자만이 유일무이한 최고의 문자라 생각했을 터이니 새로운 문자를 만들더라도 기존의 한자를 좀더 단순화해서 쉽게 쓰게 하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한자와 한글은 완전 180도 다른 문자라서 비교조차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든 것인데 솔직히 당시 정치적으로 기득권을 가졌던 자들이 백성들을 위해 엄청난 공을 들여 문자를 만들려 했다는게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세종의 무한한 백성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단순하지만 그리 생각되지 만은 않으니 내가 불순한 건지.... 

더구나 새로운 문자를 만들면 중국의 반응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될텐데 그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만든 진정한 이유는 무얼까?



한글과 약간 관계되신 분에게 질문을 던지니 ....
새로운 사실과 더불어 당시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 배경으로 짐작되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세종이 왕의 자리에 오른 당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여러가지 제도들이 정착되지 못한 상태였고 왕위를 두고 여러가지 불미스런 사건들이 있었던 터라 민심도 흉흉했을 때 였다.

특히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토지를 나눠 주기로 했는데 실제 분배 과정이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게다가 토지나 노예에 대한 소유권 분쟁도 많아서 이 문제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인지 정확치 않으나 세종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이러다 조선사람들이 다 죽어 나가겠구나."

그래서 백성들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표시하고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새로운 나라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달래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측우기나 물시계 해시계 등등 농사와 관련된 발명품들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 마음 저변에는 세종의 무한한 인간사랑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자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세력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한글을 연구할 인재들을 뽑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자의 가치를 최고로 여겼던 사람들이라 연구의 진행속도는 더디기만 하였다.

그때 책을 좋아하고 영민했던 정의공주(세종의 둘째딸)가 세종의 부름을 받아 한글창제에 가세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을 잘 알았던 그녀는 아버지 세종과 함께 가장 열심히 한글 연구를 했던 사람들 중 하나이다.

당시 그녀는 혼인을 하여 궁궐 밖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정치적인 이유로 관직에 있지도 못하였고 가정사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한글 연구에 임했는지 그녀 시댁 가문의 족보에 그 내용이 소상히 적혀져 내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의 노력과 공적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묻혀져 버리고 말았다.
여자가 만든 글자를 백성들에게 배포한다면 나라 망신이 된다는게 이유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해 그녀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고 역사 또한 기억해 주지 않았다.


'암클'  한글이 여자들이 쓰는 미천한 문자라해서 불리어진 이름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자(정의공주)가 만들었기 때문에  불리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해본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에 한글을 반대했었고 무시하던 고위관료들이 몰래 한글을 익히고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머니나 아내, 딸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한글로 써져 있었다고 한다. 

세계 여러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미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문자가 한글이라고 하는 평이 많은데 이는 여성의 섬세함과 지혜가 담긴 문자이기 때문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