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키튼의 영화 '버드맨'

 

 

 

초라허고 어지러운 방 안에 반라의 남성이 가부좌를 튼 자세로 공중부양하듯 허공에 떠 있다. 창문으로 들어 온 햇살에 온 몸을 비춘 후 서서히 지상에 발을 딛는다.

그리고 그를 호명하는 소리에 급히 옷을 걸친다. 늙수그레한 중년 남성의 초인적인 행동은 금세 감추어지고 이내 인간 세상의 골치 아픈 문제에 맞딱뜨린다.

그는 왕년에 초특급 스타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이다.

 

 

 

영원히 초인적인 버드맨으로 남아있을것 같았던 리건은 이제 더 이상 버드맨이 아니다.

그는 장르를 바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다시 한번 배우로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설상가상 주연배우의 사고로 대타로 들어 온 마이크는 사사건건 리건을 가르치려 들어 골치가 아프다. 그래도 마이크 덕분에 연극 공연은 무사히 무대에 올려 졌다.

 

 

 

 

리건의 현실은 돈 , 명예, 연기, 가족 뭐 하나 정착되지 않은 불안감이 가득한데 이러한 리건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버드맨'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전의 명성과 화려한 스폿 라이틀르 받을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그럴수 없음을 리건은 잘 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록 더 찐드기처럼 달라붙어 리건을 부추기는 버드맨때문에 리건은 예민해 진다.

 

 

 

 

 

날아오르고 염력으로 물건을 부수는등 리건은 버드맨의 능력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다. 아무도 없을때만 말이다. 현실이 그에게 각박해질때마다 버드맨으로 점점 변해가는 듯한 리건을 보면서 그의 현실이 이상과 너무 떨어져 있음이 안타깝다.

리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드맨이 등장하도록 여지를 주는걸 보면 리건의 무의식 속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나보다.

 

 

버드맨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인 것은 무대 뒤 좁은 방과 좁은 복도 그리고 좁은 계단등에서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화면기법이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 지는 긴 장면은 영화 중간중간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좁다란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는 화면 속 배우의 움직임을 앞에서 따라가기도 하고 뒤에서 따라가기도 하면서 배우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현한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리건은 병원 침상에서 창 밖을 보다가 날아가는 새들을 보더니 이내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하늘을 날았을까? 아니면 추락해 죽었을까?

이따라 들어 온 딸의 행동은 관객의 상상을 더욱 부추긴다.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바닥을 보더니 고개를 드리어 하늘을 본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무슨 뜻일까? 리건은 정말 하늘을 날았던 것일까?

리건의 모습이 어떠했을까는 영화 내내 리건의 현실과 이상을 보았던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관객의 상상이 리건의 최후이며 이 영화의 결말인 것이다.

 

 

 

 

'버드맨'의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원조 배트맨이었다는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감독의 성의(?)있는 캐스팅으로 작품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나이 든 배트맨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낡은 '버드맨'을 훨씬 더 살렸으니 말이다.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표현된 기법들이 나머지 숙제를 내 주는 것 같은 영화였다.

말을 딱 정해주는 영화가 좋은데.... 

 


Posted by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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