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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과학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한 명왕성


2006년 이후에 새롭게 태양계 행성에 대해 배운 학생들은 행성의 수가 8개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2006년 이전에 배운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태양계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 9개의 행성이 속해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항상 마지막 3개가 헷갈려 천해명이라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006년 8월 24일 오후 3시 32분 체코 프라하의 제26회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장은 수백 명의 천문학자들이 치켜든 노란 표지의 물결로 뒤덮였다.
태양계 행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압도적 지지를 받아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이 표결의 결과로 명왕성은 행성 자격을 박탈당했다.

한때 태양계 행성은 12개로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왔다가 결국 명왕성이 퇴출돼 8개로 줄게 된 것이다.

도대체 새로운 행성이 정의가 무엇이길래 명왕성은 태양계 행성의 자격을 박탈당한 것일까? 


불안한 지위를 갖고있던 명왕성


                            ▲ 명왕성과 가장 큰 위성인 카론

제26회 IAU 총회 표결의 핵심인 명왕성의 행성 지위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1930년 미국의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할 당시부터 시작됐다.

천왕성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미지의 행성'X'를 80여 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던 천문학자들에게 지구의 달보다 작은 크기의 명왕성은 실망스러운 존재였다.
명왕성은 지름이 지구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으며, 질량은 지구의 5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1919년에 창설된 IAU는 발견 당시 명왕성을 행성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이래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 벨트에서 커다란 얼음 천체들(태양계가 형성되고 남은 잔해)이 속속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부 카이퍼 벨트 천체는 크기가 명왕성에 견줄 만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어났고 2005년 발견된 2003UB313(후에 에리스로 불림)이 명왕성보다 크다는 사실이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에 의해 밝혀지면서 논란은 절정에 이르렀다.

2006년 총회의 표결에 들어가기 약1주일 전인 8월 16일 이 위원회가 제출한 초안에는 태양 주위를 돌고 항성(별)이나 위성이 아닌 둥근 형태의 천체는 모두 행성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9개 행성 외에도 소행성대에서 가장 큰 소행성 세레스와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 카론, 그리고 에리스까지 세 천체가 새롭게 행성의 지위를 부여받아 태양계의 행성 수는 12개로 늘어날 전망이었다.

               ▲ 세레스(오른쪽)와 에리스

그러나 이 초안은 즉각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논란의 초점은 행성의 정의를 크기나 모양과 같은 개별적인 특성뿐 아니라 공전궤도의 형태나 주위에 다른 비슷한 천체들의 존재 여부와 같은 외부 특성에도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행성이라면 자신의 궤도 영역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주위 천체들을 합치거나 쫓아내 주변을 정리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명왕성, 결국 행성에서 빠지다

결국 2006년 8월 24일의 투표에서 최종 확정된 정의에 따르면, 행성은 다음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 태양 주위를 돌아야 한다.
㉯ 충분히 큰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 때문에 둥글어야 한다.
㉰ 자신의 궤도영역에서 소위 '짱'으로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물리친 천체여야 한다.


이에 따라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의 8개만 행성으로 남게 됐다.

㉮와㉯의 조항만 만족하면서 위성이 아닌 천체들은 행성(dwarf planet, 태양 주위를 돌며 둥근 천체)으로 명명됐다.
명왕성을 포함한 왜행성은 '꼬마행성'이라 할 수 있지만 행성이 아니다.
IAU 초안에서 이중행성으로 잠시 유명세를 탔던 카론은 그냥 위성으로 남았다.

앞으로 왜행성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 확실하지만, 현재 인정된 8개의 행성 외에도 미래에 새로운 행성이 추가될 가능성은 있을까?
아직 카이퍼 벨트의 바깥 경계가 어디쯤인지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는 설사 지구보다도 더 큰 천체가 발견될지라도 ㉰조항에 걸려 새 행성으로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

어째튼 이번 IAU 총회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의 핵심은 명왕성이었다.
아마도 명왕성이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이어서인지 어떤 미국 천문학자는 IAU의 결정에 대해 8월 24일이 '명왕성을 잃어버린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 IAU의 결의안에서 주목할 점은 ㉮조항에 명시했듯이 일단 태양계 행성에 대해서만 정의를 내렸다는 사실이었다.
흥미롭게도 에리스의 발견자로서 논란에 불을 지핀 당사자 중 한명이었던 브라운 교수는 IAU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설혹 자신이 발견한 천체가 행성이 되더라도 온갖 어중이 떠중이가 덩달아 행성이 된다면, 행성으로 지정받은 의미가 퇴색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년 2012년에 중국에서 열리는 IAU 총회에서는 새로운 행성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자료 : 과학동아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