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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조선왕릉 이야기(7) : 의릉(경종), 원릉(영조), 건릉(정조), 인릉(순조)



정자각 지나 왕릉에 다가가면 능 주위에 다양한 석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이들이 타고온 말인 석마가 있으며, 문인석과 무인석 가운데에는 장명등이 있다.

그리고 봉분 앞에는 혼유석이 자리하고 있으며, 혼유석 양쪽으로는 긴 돌기둥 두 개가 놓여 있다.
이 돌기둥을 망주석이라고 한다.
지난 글에서 문인석, 무인석, 석마, 혼유석은 설명하였으니, 장명등과 망주석에 대해서 알아 보겠다.


먼저 장명등은 왕릉의 장생과 발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이는 왕릉의 위치를 좋은 곳에 조성하면 후손들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망주석은 육신에서 분리된 혼이 육신을 찾아올 때 멀리서 봉분을 찾을 수 있도록 표지판 기능을 한다.
또한 망주석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기능도 하며, 왕릉의 풍수적 생기가 흩어지지 못하도록 한다는 설도 있다. 


제20대 경종 : 의릉

위치 : 서울 성북구 석관동 산1-5번지 / 사적 제204호 / 1724년(영조1) 조성

의릉은 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능으로, 왕과 왕후의 봉분을 한 언덕에 나란히 배치하였다.
위쪽에 있는 경종의 능침에만 곡장을 둘렀고, 그외 혼유석을 비롯한 대부분의 석물을 왕릉과 왕후릉에 별도로 배치하였다.

1960년대 초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의릉 영역에 자리 잡았던 탓에 의릉은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해 궁궐의 후원처럼 변모하였는데, 왕릉을 이처럼 개인 정원처럼 훼손한 몰지각한 행위가 한심스럽다.

의릉은 국가정보원이 옮겨지면서 1996년 5월 1일부터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다.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10-2(동구릉) / 사적 제193호 / 1718년(숙종44) 조성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의 혜릉은 동구릉 서측 숭릉과 경릉 사이에 조성된 단릉이다.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에 같이 모셔져 있으나, 일찍 승하한 단의왕후는 혜릉에 홀로 조성되었다.
6.25로 인해 홍살문과 정자각이 불타서 주춧돌만 남은 상태였으나, 1995년 새로 복원하여 왕릉의 면모를 다시 갖추었다.


제21대 영조 : 원릉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8-2(동구릉) / 사적 제193호 / 1776년(정조1) 조성

원릉은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무려 52년에 이르는 긴 재위 기간동안 여덟차례에 걸쳐 산릉원을 조성하거나 천장하는 등 산릉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정비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의 홍릉을 자신의 자리로 정해 쌍릉으로 하기를 원했으나, 손자인 정조가 건원륭 서쪽 두 번째 산줄기에 그를 안장하고 원릉이라 했다.

원래 이곳은 효종의 능인 영릉이 있던 곳인데, 석물에 틈이나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고 하여 이장하기로 하고 봉분을 열었으나 깨끗하여 영릉도감의 책임자까지 파직되었던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 사적 제198호 / 1757년(영조33) 조성

홍릉은 21대 임금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왕후의 묘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 능의 자리를 비워두고 쌍릉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능은 정순왕후와 함께 동구릉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곳은 현재 빈터로 석물만 쌍릉 양식으로 남아 있다.


제22대 정조 : 건릉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1-1 / 사적 제206호 / 1800년(순조1) 조성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합장릉이지만 융릉과 같이 혼유석이 하나이다.
1800년 49세로 승하한 정조는 그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능인 현륭원(훗날 융릉) 동쪽 두 번째 언덕에 안장되었다.  

이후 효의왕후가 승하하여 건릉 부근에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건릉이 풍수지리상 좋지 않아 1821년(순조21) 정조의 능을 현 위치인 현륭원 서쪽 언덕으로 이장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해서 오늘날의 건릉이 되었다.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1-1 / 사적 제206호 / 1789년(정조13) 조성

융릉은 훗날 장조로 추존된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현경황후로 추존된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는 현재의 동대문구 휘경동 배봉산 아래 언덕에 안장되었으며, 아들을 죽인 것을 후회한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뜻에서 '사도'라는 시호를 올렸고, 묘호를 수은묘라고 하였다.

이후 정조가 즉위하여, 아버지에게 '장헌'이라는 시호를 올렸고, 수은묘를 원으로 격상시켜 '영우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1789년(정조13)에 무덤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으며, 혜경궁 홍씨가 승하하자 지금의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이후 고종이 장헌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능호를 '융릉'이라고 정하였다.


제23대 순조 : 인릉

위치 :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1 / 사적 제194호 / 1856년(철종7) 조성

인릉은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으로, 겉으로 보아서는 혼유석을 하나만 설치하여 단릉과 같은 형식이다.
순조는 1834년 승하 후 파주 교하에 안장되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론이 대두되어 1856년(철종7)에 현재의 위치인 서초구 내곡동 헌릉 서쪽 언덕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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