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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링컨대통령 암살의 진실은



미국 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선거 기간 동안,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 과정에서 가장 염려한 일은 다름아닌 오바마에 대한 암살이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흑인차별이 뿌리 깊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그만큼 역사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언제, 어디서 암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암살에 의해 사망한 최초의 인물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인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노예해방을 이룬 대통령이다. 우리에게는 1863년 게티즈 버그에서 행한 '~ gover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 이란 문구로 유명한 대통령이다.

링컨 죽음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사실은 포드극장에서 연극 공연을 관람 중 괴한이 쏜 총탄에 사망했다는 정도이다. 그보다는 링컨과 케네디의 죽음에 대한 100년 평행이론이라는 얘기가 더 흥미를 끄는 정도이다. 그러나 링컨의 죽음이 남부연합을 추종하는 한 인물의 개인행동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국제 은행재벌에 의한 계획적인 암살이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번 글에서는 링컨 대통령 암살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켄터키 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22세 때 가족을 떠나 선원, 가게 점원 등 여러가지 일을 경험한 뒤 1834년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1858년 링컨은 민주당의 유럭 정치가 스티븐 더글라스의 상대 후보로 일리노이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하는데, 그 일로 인해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리면서 정치가로서의 존재감을 크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리고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고, 본선에서도 60%의 선거인을 획득해 제16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 대통령에게 가장 큰 과제는 미합중국에서 노예제도를 없애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부의 미시시피 주, 플로리다 주, 앨라바마 주 등 7개의 주는 미합중국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독자적으로 대통령까지 선출하였다. 이로 인해 남북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고 마침내 1861년 4월 남북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1862년 9월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한다. 남부연합에 대해 노예해방을 명령한 것이다. 이 선언으로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13조가 성립하여 노예해방이 공식으로 인정되었다.

노예해방선언, 남군의 패배,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존재 등의 상황을 보면 이미 미합중국의 진로는 누가 예측해도 분명했다.  그러나 남부연합의 열광적인 지지자 중에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 중 한명이 26세의 무대배우, 존 윌크스 부스였다. 부스는 마지막까지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링컨 대통령 암살에 대한 전모이다. 과연 그럴까?


국제 은행재벌과 링컨의 전쟁

내게는 주요한 적이 둘 있다. 하나는 내 앞의 남부군이며, 나머지 하나는 뒤에 도사린 금융기관이다. 둘 중 후자가 더 큰 위협이다. 장차 나를 떨게 할 위기가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내 나라의 안위가 걱정이다.
금전의 힘은 사람들을 계속 통치하고 그들을 해치면서, 모든 재산이 소수의 사람 손에 들어가고 우리 공화국이 붕괴하기까지 지속될 것이다. 나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 어는 때보다 크다.
심지어 전쟁 때보다 더 초조하다.
-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직전에 윌리엄 엘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1865년 4월 14일 금요일밤, 갖은 어려움과 위기를 딛고 4년 동안 잔혹한 내전을 견디던 링컨 대통령은 닷새 전 남부의 로버트 에드워드 리 장군이 마침내 북부의 그랜트 장군에게 투항했다는 승리의 소식을 접했다. 기쁨에 들뜬 링컨은 그동안 팽팽했던 긴장감을 늦추고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 중이었다.

10시 15분, 암살범이 경호원이 없는 대통령 전용석에 잠입했다. 그는 링컨과 6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뒤쪽에서 대구경 권총으로 대통령의 뒷머리를 쏘았다. 후두가 관통당한 링컨은 이튿날 새벽 사망했다. 링컨을 저격한 범인은 존 윌크스 부스라는 유명한 배우였다. 그는 4월 26일 도주하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는 피살되지 않고 풀려났으며, 나중에 매장된 시체는 그의 공범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에드윈 스탠턴이 진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언뜻봐도 황당한 음모론처럼 들린다.(제 블로그가 음모론 전문입니다 ㅎㅎ) 그런데 전쟁장관이 다룬 대량의 비밀문서의 암호를 1930년대 중반에 해독한 후 역사학자들은 놀랍게도 당시 소문들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돈이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 금융재벌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자기 목에 올가미를 씌우는 격이었다. 링커은 해결방안으로 새 화폐인 그린백을 발행했다. 새 화폐 정책의 독창성은 금과 같은 금속화폐로 담보를 잡지 않으며 20년간 5%의 금리로 쓸 수 있게 했다. 남북전쟁 기간 전체를 통틀어 링컨 정부는 4억 5,000만 달러의 새 지폐를 발행했다.

새 화폐의 발행은 국제 금융 거두들의 근본적인 이익을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었다. 만약 모든 정부가 은행에 돈을 빌릴 필요없이 스스로 화폐를 발행해 사용한다면, 은행재벌이 화폐 발행을 독점하는 시대는 영원히 작별을 고할 것이다. 그럴 경우 은행이 좋은 시절을 구가하는 것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러면 링컨 암살의 진범은 누구인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링컹은 의회에서 권한을 부여받고 국민에게 국채를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와 국가는 외국 금융재벌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 국제 금융재벌들이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미국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링컨의 죽음도 멀지 않았던 것이다.


흑인 노예를 해방하고 남부를 통일한 링컨은 남부 정부가 전쟁 중 진 빚은 모두 무효로 한다고 선포했다. 전쟁 동안 남부에 줄곧 거액의 금융 지원을 해온 국제은행은 참담한 손실을 보았다. 국제 금융재벌들은 링컨에 보복하고, 나아가 링컨의 화폐 정책을 뒤집기 위해 링컨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을 모아 치밀하게 암살을 준비했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국제 금융 세력의 조정을 받은 의회는 링컨의 새 화폐 정책을 폐지한다고 선언하고, 새 화폐 발행 상한액을 4억 달러 미만으로 동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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