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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국립대전현충원에 성묘를 가서, 아버지! 모른체하면 다신 안 올겁니다

 

금요일 오후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8시에 출발할거야. 올래?"

친정아버지가 계시는 대전 현충원에 친정어머니와 동생 둘이서 다녀오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고 올해는 같이 가기로 했다. 몇 시에 출발할건지 알려 달라고 했더니 동생에게 물어보고 전화를 하신거다.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서 식탁에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남겨두고 일부는 싸서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동안 몇번 다녀오긴 했지만 친정어머니와 동생하고만 다녀온 적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셋이 다녀올 기회는 없겠지.

친정 근처 지하철역에서 동생 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막히는 곳은 없었다. 고속도로변의 나무들과 먼 산의 나무들은 울긋불긋 물들어 가을의 정취가 한껏 묻어났다. 들판의 곡식들은 황금빛으로 영글어 가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렀던 휴게소의 선뜻선뜻한 가을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어머니와 나눠 마시는데 한 말씀을 하신다.

"니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제일 좋아하는 자식들이 같이 가니까"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짓지만 마음 한켠이 찡하다. 아버지는 나를 엄청 예뻐하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가족을 힘들게하는 몸마저 성치 않은 무능한 상이용사였다.  

운전하는 동생의 뒤에서 어머니와 나는 도착할 때까지 수다의 재미에 빠졌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주자창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성묘를 온 사람들과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꽃을 사러 매점으로가는데 어머니께서 오늘은 색깔꽃을 사라고 하신다. 나는 가을을 상징하고 내가 좋아하는 소국을 샀다. 지난번엔 생화를 팔았는데 오늘은 흰색 국화만 생화일뿐 모두 조화만 팔고 있었다. 흰색을 섞은 노란색과 보라색의 소국을 한다발 사서 나왔다.

아버지가 계신 자리가 저만치 앞에 보인다. 작년에 오고 1년만인데 그리 낯설지가 않다. 꽃을 예쁘게 꽂고 간단히 준비해 온 술과 포, 그리고 사과를 단위에 올려 놓았다. 아버지를 이곳으로 모시기 전에 있던 곳은 왠지 마음이 서늘했는데 이곳으로 옮긴 후부터는 마음이 편안하다.  

 아버지 주위 가까이에 같이 잠들어 계신 다른 분들의 묘비를 살펴보니 1930년생, 1926년생, 1933년생이신 분들이 대부분인데 1980년생 중위의 묘비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1980년에 사망한줄 알았는데 사망년도는 2007년도이다. 27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젊은 장교가 무슨 일로 여기에 온걸까? 주위엔 모두 호호 할아버지들만 계셔서 심심할텐데 말이다.

'아버지 친손자와 외손자가 올해 수능을 봐요. 마무리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수능 당일 날 컨디션 좋게 도와주세요. 수능 끝나면 아이들 데리고 다시 뵈러 올게요. 모른체 하시면 다신 안 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