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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주부탈출! 부산 겨울바다 여행, 그리고 육계장과 벌금 오천원

 

주부탈출! 부산 겨울바다 여행, 그리고 육계장과 벌금 오천원

고3 엄마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나서 첫 여행을 가게 되었다.

 

설레는 주부탈출

학교도 가지 않으니 깨울 일도 없고 밥을 먹든지 말든지 걱정 할 것도 없으니 후련한 마음으로 친정엄마와 이모님들의 초청을 받아 당일치기도 아닌 무려 1박2일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직 학교 발표가 나지 않아서  갈까말까 고민도 했지만 이왕 기회가 온거 가보자 마음 먹었다. 

전에는 여행을 가려면 아이들 짐에 어른들 짐까지 챙기느라 내건 빼먹기 일쑤였는데 여행의 달인(?)이신 친정엄마가 몸만 오라고 해서 챙길 것도 별로 없었고 가족 다 팽개치고 홀홀 단신 놀러가는 기분에 몸도 마음도 마냥 들떠버렸다.

 

 

여행을 가려면 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입고 갈 옷이 없다' 옷없이 살았던 것도 아닌데 치장을 부리자니 마땅한게 없어서 딸아이의 협찬을 받아 나들이 옷을 해결했다. 겨울이라 두툼하게 입어야하니 큰 문제가 없는데도 소풍날 새옷을 입고 싶은 아이마음이 되버렸다. 홀쭉한 가방이 아쉬워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고 집에는 육계장을 찜통 하나 끓여 놓고 밤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30여분 빨리 도착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주말 야간 시간이라서 그런지 모임을 이루어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 기분 탓인지 다들 즐거워보이기만 하는 얼굴들이다. 서울역을 이용한 적이 몇 번은 있지만 집안일 때문에 바삐 오고 가느라 살펴볼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서울역의 밤풍경은 마음이 여유로워 그런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처음 탄 KTX

게다가 드디어 KTX를 타는 날이다.

 

 

KTX를 처음 타본다는 내게 그동안 뭐하고 살았냐고 되묻는 남편에게 그러게 내가 왜 이러고 살았나 모르겠다며 한숨 섞어 대답했는데 그 빠르다는 KTX를 드디어 타보게 되었다. 동행하시는 분들이 70대 노인이 세 분이라 오래 기차를 타는게 무리가 될듯싶어 KTX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6명의 여자들이 솔로 여행을 떠났다.

KTX의 실내는 예상보다 좌석 간격이 좁아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어두운 밤이라 속도감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차안내 방송을 들으니 상당히 빠르긴 하다.

이 여행을 준비한 사촌 언니와 자리를 같이 앉았는데 통로 건너편에 앉은 이모가 갑자기 내 나이를 묻더니 민망할 정도로 놀라신다. 하긴 이모님들의 연세를 들으니 나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어느 새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네가 막내이니 쫄병 노릇 잘하라는 말씀에 힘차게 대답했다.

 

집에서 전화오면 벌금 오천원!

부산역에 내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건 광장에 있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잠이 덜 깬 몸도 추스릴 겸 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으로 향했다. 유리창에 장식된 오색 전구와 눈송이들이 환상적으로 보이고 부드러운 커피향과 귀에 익은 캐럴송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신식 할머니들이라 커피맛을 아신다.

그 때 큰 이모의 핸드폰이 울리는데 다른 이모님들이 받지 말라고 한다. 

"언니, 형부한테 전화오면 벌금 5천원이야."

그러더니 나에게도 집에서 전화오면 벌금 5천원인 줄 알아라 하신다. 어쩔줄 몰라하는 이모님을 보면서 우린 한바탕 웃었다. 결국 전화를 받고 이모님은 벌금 5천원을 기부하시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도 벌금 5춴원을 기부했다.

 전화의 주인공은 남편  "후추가루 어딨어?"

 

즐거운 부산시티투어

세번째 방문하는 부산!

부산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구석구석을 누비며 예전에 갔던 곳에서는 추억을 생각하고 처음 가본 곳에서는 감탄을 하며 부산에 대한 추억을 만들었다. 새벽 자갈치 시장에서 시원한 재첩국도 먹고, 국제시장 먹자골목에서 씨앗호떡에 떡꼬치도 먹고, 지짐도 한장 먹고, 매운 떡볶기도 먹고, 태종대에서는 비바람 강풍에 목숨걸고 유람선을 타기도 했다.

 

 

비 맞으며 송도해수욕장과 해운대를 청승맞게 걸었고 누리마을에 들렀을 때는 노을도 구경했다. 70대 이모님들은 빠듯한 일정을 잘도 따라오신다. 부산역으로 가는 길에 멋진 광안대교를 건너며 불빛잔치를 벌이는 야경을 끝으로 우리의, 아니 나의 부산 여행은 막을 내렸다.

 

여행이 주는 피곤함이 몰려 오지만 여행이 주는 에너지 때문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들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