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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브리튼의 전설적인 영웅 아더왕

 

브리튼의 전설적인 영웅 아더왕

 

지난 제30회 런던올림픽은 영국에서 열린 세 번째 올림픽이다.

 

영국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민족이며 축구 양궁 등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올린 종목들이 시작된 나라이다. 이처럼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재미있는 전설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영웅담이 있으니 바로 원탁의 기사 아더왕의 이야기이다.

 

 

 

 

 

이 전설적인 영웅이 정말로 실재했는지의 여부를 증명할 단서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역사가들 중에는 아더왕이 신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아더왕의 전설

 

아더왕의 명성이 알려진 것은 1145년 제프리가 쓴 저서 <브리튼왕 열전>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이다.

 

이 책은 아더왕이 콘월의 틴타젤성에서 태어났으며, 아더왕은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프랑스를 정복한 다음 로마를 진격해 들어갔다고 적고 있다그러나 제프리의 역사서 대부분이 소설적 성향이 짙은 가공된 사건들이며, 아더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틴타젤성만 해도 아더왕이 죽은 지 600년이나 경과한 1141년에 건립되었다.

 

 

 

 

 

 

아더왕의 진실은 무엇인지 전해지는 전설을 따라가 보자.

 

410년 무렵, 로마인들은 로마를 야만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브리튼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 때 기회를 노리던 보티게른이란 족장이 스스로 브리튼왕이라 선포하고 왕위에 올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의 국경에서 야만적인 피트족과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그는 유럽에서 색슨인을 용병으로 불러들였고, 색슨인은 그들의 임무가 끝난 뒤에도 잉글랜드를 식민지를 삼으려고 계속 브리튼에 머물렀다. 본토박이인 브리튼인은 서서히 콘월이나 웨일즈로 퇴각했으며 200년쯤이 지나서야, 브리튼은 잉글랜드가 되었다.

 

잉글랜드란 앵글로색슨인의 땅이란 의미로, 결국 색슨인이 영국의 주인이 되었다.

 

 

런던올림픽을 개최한 영국이 남자 축구팀을 단일팀으로 구성했다고 자랑하였는데 특히 우리가 잘아는 웨일즈 출신인 맨유의 긱스가 주장을 맡았으며 전력도 역대 최강이라 했지만, 영국의 역사로 볼 때 원래 뭉치기 힘든 배경이 아더왕의 전설에서도 알 수 있다.

 

 

 

 

 

색슨인이 잉글랜드를 정복하는데 2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이유는 브리튼인의 결속이 단단했기 때문이다. 원래 로마의 전사였던 암부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는 몇 번이나 색슨인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아우렐리아누스가 죽자 우더 팬드라곤이 후계자가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젊은 지휘관인 아르토리우스가 후계자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아더왕이다.

 

아더왕은 열두 번에 걸친 대전투에서 색슨인을 격파했으며, 최후의 전투인 베이드산의 전투에서는 색슨인은 엄청난 군사력을 손실하였고, 그 이후 50년간 공격을 하지 못했다. 당시 아더는 45세 전후였으며 그 후 20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더와 동맹을 맺었던 부족이 내분을 일으켜, 아더는 '캄란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아더왕의 죽음

 

전설에 의하면, 아더는 글래스톤베리로 옮겨져서 죽었으며 그 곳의 수도원 부지 안에 은밀히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색슨인들이 무덤을 훼손시키는 짓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전설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1190년 글래스톤베리의 수도승들은 다음과 같이 새겨진 납 십자가가 부착된 석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발론 섬의 이름 높은 왕 아더가 여기에 잠들다."

 

 

 

 

 

더구나 이 묘석 아래에 있었던 엄청나게 큰 관에는 커다란 남성의 해골과 왕비 기네비아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해골이 발견되었다. 색슨인이 글래스톤베리로 진격한 때는 아더왕이 죽은 지 30년이 지난 568년 이었다.

 

아더왕이 죽은 지 100년이 넘었을 즈음, 웨일즈어로 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시가 나돌았는데, 이처럼 켈트인 사이에서 아더왕의 전설이 전해졌던 것은 아더가 부활해서 침입자들을 브리튼에서 쫓아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지않은 면적의 섬나라에서 지금도 분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아더왕 때부터의 민족감정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