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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동화로 보는 세상

쓸쓸히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 동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동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줄거리

 

 

 

심심했던 에스테르와 나는 죽은 벌을 발견하자 무덤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멋진 추모시 한 편을 지어 벌에게 낭송해 주면서 우리는 장례식 행사가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다. 

 

 

 

쥐와 햄스터, 그리고 토끼와 고슴도치까지 우리의 멋진 장례식 행사는 계속 되었다.

지빠귀가 창문에 부딪혀 죽는 모습을 목격하고 지빠귀를 위한 장례식을 하는데 내 손에 든 지빠귀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지자 나도 모르게 울컥해 졌다.

 

 

 

이전까지 장난스러웠던 에스테르도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빠귀를 묻어주면서 에스테르가 처음으로 울었다. 

나는 지빠귀를 위한 마지막 추모시를 지어 낭송했다.

'너의 노래는 끝났다네. 삶이 가면 죽음이 오네.'

 

 

 

더 이상 장례식은 놀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다른 놀이를 하며 놀았다.

 

 

쓸쓸히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처음에 아이들이  무덤을 만들고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기도를 하고 시를 낭송하는 장례식 과정은 죽은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심심풀이를 위한 놀이였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죽은 동물들을 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장례식을 치뤄주면서 놀이로서의 만족감만을 느꼈었다.

 

 

하지만 실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지빠귀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동물들의 장례식이 놀이가 될 수 없음과 생명의 고귀함도 알게 된다.

하지만 장난이었다해도 외롭고 쓸쓸히 죽어갔을 동물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을 치뤄 주었던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느낀다.

 

 

동화로 보는 세상

몇 년 전, 딸아이 친구가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키우던 토끼를 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아침에 일어나니 토끼가 죽어 있었다. 동물병원에 의뢰해 토끼의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차에 토끼의 죽음은  불편함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으니 동물을 키우지 말자고 했었다.

사람의 죽음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던 토끼의 죽음에 빈 토끼장을 얼른 눈에 안보이게 치워버렸다.

사람의 죽음이든 동물의 죽음이든 '죽음'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지만 죽음도 삶의 연장선 위에 같이 있음을 알게 해 주는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