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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동화로 보는 세상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 - 똥 치우는 엄행수가 스승이라네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 - 똥 치우는 엄행수가 스승이라네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

선귤자(실학자 이덕무의 호)에게는 예덕선생이라 칭하는 벗이 있었다. 그는 마을의 똥을 치워주는 일을 하는 엄행수였다. 선귤자의 제자 자목은 스승이 엄행수를 벗이라 여기는 것에 불만을 품고 그의 곁을 떠나려 하자 선귤자가 벗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

보통 장사꾼은 이익을 생각하며 벗을 사귀고 양반은 아첨으로 벗을 사귀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만 부탁하면 사이가 멀어지고 아무리 원수 같아도 세 번만 선물을 주면 친해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행수는 해마다 정월 초하루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며 먹을것이든 입을것이든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가 모아 놓은 똥들은 좋은 거름이 되어 밭을 비옥하게 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수확을 가져다 준다.

선비가 가난하게 산다고 티를 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출세했다고 자만하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덕을 똥 속에 감추고 자신을 낮추어 살아가는 엄행수야말로 참된 은자라 할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엄행수는 벗이 아니라 스승이라 할 수 있으니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똥 치우는 엄행수가 스승이라네

'예덕'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행실을 뜻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예덕은 천하지만 참된 덕성을 의미한다.

당대 최고의 학자중 한 사람인 선귤자가 미천한 엄행수를 보고 선생이라 호칭한 것은 엄행수의 행실에서 도의 경지에 오른 은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니 그가 하는 일이 비록 미천하다하나 누구에게 해도 끼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사람과 자연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고보니 선귤자는 엄행수를 가리켜 더러운 똥 속에 자신의 덕을 숨기고 사는 참된 은자가 아니냐 하였다.

좋은 것만 쫓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그것들을 마다하고 꿋꿋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운 세상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동화로 보는 세상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미천한 엄행수를 벗이자 스승으로 여기는 선귤자와 선귤자가 엄행수를 스승이라 부르자 창피한 마음에 떠나려는 자목에게 딱 맞는 말이다.

조선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소설인 이 작품은 생산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한 양반에 대한 비판과 벗이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깨우침에 이르도록 해 주는 사람이란 걸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