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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4.19 혁명은 헌법 1조 2항의 실천

 

4.19 혁명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 부통령 선출과정에서 자유당은 반공개투표와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발표 등의 부정선거가 밝혀지면서 공분한 국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11일 마산에서 시위도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4월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드디어 4월 19일, 서울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세종로와 태평로에 모여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시위대가 경무대로 향하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를 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승만은 계엄을 선포하여 사태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4월25일,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정당하다는 전국 교수단의 시국선언문은 시민궐기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를 했고 이승만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이기붕은 4월 28일 가족들과 함께 자살했다. 이승만은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다.

 

4.19의 의미

4.19 민주혁명에 참가하여 사망한 사람은 약 180여명, 부상자만 7천여명에 달했다.

이후 정부는 부정부패, 독재등 불의에 항거한 4.19영령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뜻에서 1963년 묘지를 준공하고 4.19묘지로 관리해 오면서 1973년까지 서울시 주관하에 기념식을 가졌다.

1974년부터는 4.19의거 기념일로서 보훈처 주관의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강북구청은 매년 4월18일부터 20일까지 보훈처의 후원으로 '4.19혁명 국민문화제'라는 다채로운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학술토론회와 엄홍길대장과 함께하는 트래킹, 태극기그리기등의 행사가 있으니 참여해봐도 좋겠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1조 2항에 명시된 조항이다. 영화 속 송강호의 대사에도 나왔던 이 말은 듣는 이들에게 소름을 끼치게 할 만큼 강렬했다. 1960년 중고등학생들도 자신들이 권력의 핵심임을 알고 목숨을 걸고 주권을 행사하였고 부정부패한 위정자들을 자리에서 몰아내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기초, 사회제도,경제제도, 조직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또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혁명이란 이전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것을 급격히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혁명이 필요한 시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나 주권의 행사에 있어 무기력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