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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날 약속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5월의 대명사는 당연히 어린이날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어린이날이라 제정한 날짜는 5월1일이었다. 5월1일은 천도교 소년회의 창립일이라 그 날로 정한것인데 '메이데이'와 겹친다 하여 1946년 5월 첫째주 일요일인 5일 어린이 날 행사를 하면서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혼란을 줄이고자 5월 5일로 날짜를 지정하였다. 이 후 1975년부터는 법정공휴일이 되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

'어린이' - 어린 아이를 격식을 갖추어 대접하여 이르는 말, 4-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이른다' 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만들어 사용했는데 어린이의 '이'는 '분'이라는 의미로 어린 사람을 높여 부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방정환 선생은 사업실패를 하면서 천도교와 인연을 맺은 부친을 따라 천도교에 들어가 어린이 토론 연설 모임인 '소년입지회' 활동을 하면서 동화구연과 토론들에 참여 하였다. 그의 동화구연은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할 정도로 구연능력이 뛰어났다. 지나가던 일본순사가 귀동냥으로 듣다가 눈물을 흘려 소문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그의 청년문화활동은 범위가 넓어졌다. 천도교의 지원으로 일본 도요대학에서 철학과 아동문학, 아동심리학을 공부하였고 귀국한 뒤에는 세계 명작 10편을 번안하여 발표하였고 시와 수필등 창작활동에도 힘썼다. 그는  유머와 모험, 탐정등 어린이의 상상력과 정서를 자극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평소 어른들에게는 '아이를 내려다보자 말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말했으며 아이에게는 '지는 해와 돋는 해를 꼭 보도록 합시다' 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어린이에 대한 그의 의식이 어떠했는지 잘 알게해 주는 말이다.

1931년 33세, 젊은 나이에 일제탄압과 내부조직의 분열등으로 신장염과 고혈압이 겹쳐 쓰러지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죽기전 '가야겠어, 문밖에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어린이를 사랑한 아동문학작가다운 유언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날 약속

망우동에 있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연보비에는 아래 글이 적혀있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에 전단지로 만들어 배포했던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내용 중 일부인데 간결하지만 어른들이 아이를 어찌 대해야할지 잘 알려 주는 글이다.

 

 

<사진 출처 : 동양일보>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지금 대한민국을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