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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Book

소설 '꺼삐딴 리'와 영화 '마이웨이'의 차이는 기회주의자와 기회가 필요한 자

 

소설 '꺼삐딴 리'의 이인국

작가 전관용의 작품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일본 제국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능숙한 일본어를 구사하며 일본 부호들을 상대로 진료를 한다.

 

 

 

해방 이후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죽음의 문턱까지 가지만 소련군의 간부를 치료해 주고 그의 보호 아래 의사 생활을 지속하게 된다. 그는 소련어가 필요한 세상임을 인지하고  공부하면서 그들과의 의사소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신에 흡족해 한다.

그는 아들까지 소련으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1.4후퇴 때 남하하여 미국인을 만나면서 그는 육감적으로 미국의 세상임을 인지하고 영어공부를 한다. 이미 일본과 소련의 치하에서 어찌 살아야 하는지 몸으로 터득한 이인국 박사는 고려청자를 들고 유창한 영어와 함께 미국인을 찾아간다.

이인국이라는 인물은 좋은 머리와 빠른 판단력을 가진 질 좋은 의사이지만 일제 식민지하의 백성이다.

하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로 선택한 삶의 기준에는 그와 가족의 안위만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가족까지도 자신의 안위를 위한 도구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아들을 소련에 보내고 딸을 미국에 보낸 것은 자신을 위한 보험(?)이었으니 말이다.

 

 

영화 '마이웨이'의 준식 (장동건역)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장동건을 비롯한 한중일 배우들의 공동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다.

 

 

조선인 준식(장동건)은 강제징집 당하여 일본군으로 전투에 참가하게 되지만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다. 그는 소련군을 빠져 나와 독일로 탈출을 감행해 성공하지만 다시 독일군복을 입고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하게 되고 연합군에게 다시 포로로 잡힌다.

실제 인물의 실화를 영화하 했다는 이 작품에서 준식은 자국인 조선군이 아닌 타국의 군인으로서 목숨 건 전투에 참가하여 흘러흘러 프랑스까지 가게 되었다. 영화 속 준식은 조선인이지만 생존에 대한 선택권이 없던 일제 식민지 백성이다.

그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코 앞에 닥친 죽음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 판단만이 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준식이 일본군이 되고 소련군이 되고 독일군이 된 것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픈 열망 하나 때문이다. 

 

 

기회주의자와 기회가 필요한 자

작품 속 가상의 인물(이인국)과 실제 인물(준식)의 인생 여정이 닮은 듯 다르다.

준식의 선택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죽을 때 군번줄을 일본인 친구에게 준 것은 인류애에 대한 표현이었다. 준식의 선택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보편 타당한 가치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위한 많은 선택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이 더 서글프고 안타깝다.

이인국과 준식의 선택에 있어 근본적인 공통점은 '생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인국의 선택을 보면서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인국이 그의 선택을 두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함을 주장하더라도 같은 사회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그는 자격이 없다.  

그의 지식과 열정이 조금도 타인과 사회를 위한 배려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