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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Interest

파로스 섬의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무너진 이유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설로만 남아있지 실물은 결코 볼 수 없다.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 말고는 지금은 결코 볼 수 없는 다른 고대 불가사의와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 등대도 오래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2백 미터, 16층 높이의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등대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파로스 섬에 서있던 알렉산드리아 등대

아프리카 대륙의 북부 이집트 연안에는 알렉산드리아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그리고 항구 바로 앞에는 파로스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가 그리스, 인도, 아프리카를 정복한 후 대제국을 세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지중해 아프리카 연안에 세운 도시이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대제국은 다시 셋으로 분열되였고 이집트에는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섰다.

등대가 만들어질 당시 이집트의 왕은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였고 등대를 만든 이는 이집트 사람인 소스트라테스라는 건축가였다.

기원전 3세기(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에 파로스 섬에 만들어진 거대한 등대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거울이 달려있었는데 35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거울에 반사된 빛을 볼 수가 있었으며, 태양광선을 모아 바다에 떠있는 배를 태울 수도 있었다 하니 등대의 규모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욕심 때문에 무너진 등대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일대의 문화적 중심지로 그리스의 철학, 과학, 문학의 위대한 작품들의 대부분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탄생하였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처럼 번성하던 알렉산드리아도 천년 후인 7세기 무렵에 아랍인에게 정복되었다.

 

 

 

당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에게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적, 상업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바다건너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를 믿는 비잔틴 제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파로스 섬에 우뚝 선 알렉산드리아 등대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은 기를 펴지 못하는 신세였다.

그러자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알렉산드리아의 칼리프 알 와리드에게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비잔틴 황제가 내린 비밀 임무를 안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났다. 비밀 임무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게 거짓 소문을 내는 것이었다.

소문은 등대 밑에 옛 이집트 왕의 엄청난 금은보화가 묻혀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이집트 관리들의 귀에 들어갔고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왕인 칼리프에게도 알려졌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던 칼리프는 등대를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철거작업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칼리프는 속았음을 알고 철거를 중단했지만 다시 등대를 이전 모습으로 복구하기는 불가능했다. 거대한 등대를 복구할 정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다 거울도 이미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금은보화에 대한 욕심이 천 년 동안 서 있던 등대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흉측한 모습으로 서있다 14세기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