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큐'

 

 

이 세상에 완전한 선과 완전한 악의 경계선을 구분 지을수 있을까? 

가난한 아비가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지만 사람들은 사회는 외면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다. 규칙에 제외되는 경우이다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 당장 몇 푼의 돈도 없는 부모가 며칠 내 죽을 지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아비를 외면한다.

가난한 아비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총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했다. 아비는 아이를 살려 내라며 소리쳤고 그제야 사람들은 죽어가는 아들을 안은 아비를 돌아보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들을 살리고픈 아비는 선일까 악일까? 다수의 공평한 기회와 권리를 위해 주어진 직무에 충실한 의료진들의 냉정함은 선일까 악일까? 

철강 노동자인 존은 그의 아내 말대로 착하고 순한 사람이지만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으로 매달 돈 걱정을 해야하는 고단한 가장이자 멋진 보디빌더를 꿈꾸는 어린 아들을 둔 아빠이다.

 

 

 

부분의 서민들이 그렇듯 매달 지출은 수입을 초과해 돈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지만 존은 개구쟁이 아들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존의 경제적 궁핍이 자신의 무능력 탓인지 불합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존의 어린 아들이 부족한 이식 수술비 때문에 대기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하는 것을 아버지인 존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탓할 수 만은 없다.

 

 

애끓는 부정 '내 손으로 아들을 묻을 순 없어!'

 

'가난은 창피한게 아니고 불편한 할 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함에 대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이지만 병든 이들에게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아주 강도 높은 고통이다. 

 

 

 

영화 속에서 존은 아들의 수술비를 지원받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 다니며 알아봤지만 그에게는 하나도 적용될만한 제도가 없었다. 존은 소리친다.

"돈 한푼 없는 부모에게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자격이 얼마나 더 필요한겁니까?"

 

 

 

얼마 전 세상에 충격을 준 세 모녀 자살사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들이 여기저기 알아봤다해도 세 모녀가 지원받을만한 자격이 되기는 힘들었다는게 관계자의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길은 보이지 않고 거절을 당할수록 마음의 상처와 상실감이 커진다. 

마음이 힘든데 몸까지 힘들면 어느 순간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존의 경우처럼 과격한 행동을 보여 사회적인 물의를 빚기도 하지만 안타깝게 삶을 끈을 놓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자격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이 영화의 대사들은 가슴에 와 닿는 감동적인 대사들이 많다.

'내가 아들을 묻을 순 없어, 아들이 날 묻어야지.', '선을 넘은 건 당신과 이 (불합리한)체제 자체가 선을 넘었다구', '무고한 생명만 소중하고 억울한 내 아들 생명은 소중하지 않아?'

아들을 살리고픈 절절한 부정의 눈물과  사회 복지 제도의 불합리한 허점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표현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아 눈을 뗄 수 없는 하는 영화이다.

  


Posted by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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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죽풍 2014.09.06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회는 법과 제도로 안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들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의 정이 영화 속에 가득할 것만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영화 속에 오버랩되는 느낌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 2014.09.07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건강정보 2014.09.07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줌인님 즐거운 명절 되세요~^^

  4. BlogIcon 이바구™ - 2014.09.12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보고 싶은 영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