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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내 아버지 - 한대위


분단국가의 가장 큰 상처인 이산가족의 1세대 어르신들이 연로하신 까닭에 매년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몇십년 동안 그리움 속에 살다가 결국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그분들 중에 내 아버지도 계셨다.

원산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할머니와 누나와 살던 소년은 그 마을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수학천재 소년이었다.
수학선생님이 장래희망이었던 소년은 어렵지만 할머니와 누나의 보살핌 속에 잘 자라주었다.


그러나 6.25 전쟁때문에 군대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소문에 대가 끊어질 것을 우려한 할머니는 소년에게 몰래 남쪽으로 도망가 있다가 오라고 했다.


당시 결혼해 임신중이던 누나와 할머니를 두고 소년은 매형과 함께 밤을 이용해 원산을 도망쳐 나왔다.

한겨울이라 추위에 죽을것 같았지만 소년과 매형은 남한쪽에 내려왔으니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매형과 헤어지게 되었다.

구두닦이로 길거리 생활을 하던 중 그의 영리함을 발견한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매형을 찾아다녔다.

소련어를 잘하고 수학도 잘하고 얼굴은 곱상한 소년은 열심히 공부해서 수학선생님이 되어 할머니와 누나에게 돌아가면 매형도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속에 살았다.

그리고 고대 수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매형도 만나지 못했고 할머니와 누나에게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입대영장이 나왔고 군에 가야했다.

팔자였는지 운명이었는지 소년은 육군 간부후보생으로 장교가 되어 군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가 장교가 된 이유는 구타에 못이겨 선택한 차선이었는데 그 선택이 모진 인생길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군에서 3번의 차량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어 제대한 소년은 사업에 손을 대지만 사기로 인해 돈과 사람을 잃고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 이후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았고 군에서 다쳤던 다리의 통증은 점점 더해갔다.
통증을 잊기위해 술을 마시게되고 다음엔 술이 술을 마시게 되니 사회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왜 소년은 수학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
너무나 안타깝다.

80년대 어느때쯤 이산가족 찾기 방송으로 전국이 들썩거렸을 때 매형의 가족을 찾았지만 매형은 1년전 이미 돌아가셨다고 한다.

매형도 어린 처남을 찾으러 여기저기를 헤맸고 죽기 전까지도 죄책감으로 속상해 했다고 하니 소년과 매형의 얄궃은 운명에 한숨이 나올뿐이다.

그 이후 더욱 술힘을 빌어 절망스런 생활을 하던 소년은 도망치듯 한마디도 안하고 매형에게로 가버렸다. 아마도 할머니와 누나에게로 달려갔겠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름답지가 않아서 좋은 장면들이 별로 없다.

다만 술에 취해 머리를 조아린 모습이 그때는 미웠는데, 실은 사무치고 사무치도록 그리운 고향에 가고 싶어했던 마음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좀더 컸더라면 이해했을텐데 그땐 나도 너무 어려서....

통일이 된다면 원산에 꼭 가봐야 한다. 

아버지가 할머니와 누나를 만나서 행복한지 
그리고 좋아하는 수학공부는 계속 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