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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왕이 되지 못했던 비운의 왕세자들


조선왕조의 왕위 계승은 장자계승이 원칙이었다.


어찌보면 장자계승 원칙은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왕이라는 큰 권력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막기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 적장자가 왕위 계승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만이 정비의 몸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나서 왕이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독자로 태어난 경우이기 때문에 적정자의 왕위계승은 행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조선왕조에서 적장자가 왕위 계승을 하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정비에게서 왕위 계승을 위한 원자를 얻지 못한 경우이며, 또 다른 경우는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전이 조선 왕조에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세자로 책봉된 적장자이면서도 조선왕조에 왕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들도 있다.

흔히 말해 로또에 당첨되고도 돈을 찾지못한 불운한 이들은 누구일까?
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는 바로 양녕대군, 소현세자, 사도세자이다.


양녕대군(1394 ~ 1462)

조선의 제4대 국왕으로 등극할 것이 전혀 의심되지 않았던 양녕이었지만, 자신의 거듭된 실책과 부왕인 태종의 냉철한 결정으로 엄청난 행운을 박탈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 동작구 상도동 약수터 부근의 지덕사

양녕대군은 정비(원경황후)의 장남으로 큰 행운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
1394년(태조3)에 태어났을 때 아버지 이방원은 정안대군이었지만, 6년 뒤 조선의 제3대 왕으로 등극했다.

양녕대군에게 찾아온 행운은 수 많은 왕자군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예약한 엄청난 것이었다.
적어도 이때부터 양녕대군은 20세 무렵까지 매우 순조로운 앞날이 보장된 시절이었다.

그는 열살때 이제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1402년, 태종2) 한달 뒤 원자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넉달 뒤에는 드디어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세자의 나이가 다소 어렸지만 이처럼 신속하게 후계구도가 결정된 이유는 왕위 계승의 중대성을 몸소 경험한 태종의 판단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양녕은 점차 태종의 기대에 어긋나는 실행을 저질렀고, 마침내 태종은 다시한번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은 양녕대군 개인에게는 물론 조선의 국운에 커다란 의미를 지닌 결단임에 틀림없었다.

양녕은 실행은 반복되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태종의 질책에 항명하는 잘못까지 저지르게 된다.

달밤에 궁궐 담을 넘어 무뢰배들과 어울리고, 기생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밤새도록 놀곤 하였다.
이러한 비행이 이어지자 마침내 태종은 신하들의 건의를 받는 절차를 취해, 1418년 양녕을 왕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자신의 실행으로 권력에서 배제되었지만, 양녕대군은 정치적 관심이 적지 않은 인물이었나 보다.
그는 세조의 집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또한 6개월 뒤 양녕은 단종의 사사라는 훨씬 중요한 문제에도 개입했다.
세종의 직계손자인 단종의 죽임을 강력히 주청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진면목을 엿볼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드라마에서 세조의 옆에 있어야 할 양녕대군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건 못내 아쉬웠다.
이런 행적을 보인 양녕대군은 1462년 9월 7일 서울의 자택에서 파란 많은 삶을 마쳤다.
68세로 그 시기에는 장수한 나이였고, 세살 아래로 53세에 승하한 세종보다 12년이나 더 살았다.

                      ▲ 동작구 상도동 지덕사에 있는 양녕대군이제묘역

양녕대군의 죽음을 기록한 사평의 한부분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성품이 어리석고 곧았으며, 살림을 돌보지 않고 활쏘기와 사냥을 즐겼다.
세종의 우애가 지극했고, 그 또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아 시종(始終)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를 볼때, 양녕대군이 조선의 제4대 왕이 되지 못하고 폐세자로 생을 마감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비운이나 국가적으로는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면에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는 양녕대군과는 달리 부왕에 의하여 직접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세자들이다.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