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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꼭,꼭, 잘 살어....속상한 후배의 결혼식


출발할땐 날이 괜찮더니 지하철 역에서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없이 나왔던터라 잠시 추춤거리며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칠것 같지 않아 급한대로 목도리를 머리에 두르고 뛰었다.

다행히 결혼식장은 멀지 않아 비를 많이 맞지는 않았다.
옷에 떨어진 비를 털며 2층으로 향했다.

예식 시작 5분전이라 이미 사람들은 식장안 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두리번 거리며 후배의 이름을 찾았다.
축의금 봉투를 꺼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간단한 메세지를 썼다. 
아무도 안썼는데 나만 썼다.

식권을 주길래 괜찮다고 하고 바로 식장으로 들어갔다.
신랑은 입장해 있었고 신부가 입장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마음과 달리 후배는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조심조심 신랑 곁으로 걸어갔다.

'보란듯이 잘 살어. 네가 무지무지 아깝고 속상하지만 네가 좋다면야  뭐....'



언니 돌보랴 동생 볼보랴 결혼 시기를 놓친 후배가 시집을 간다.
40이 살짝 넘은 나이에....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때는 이리저리 걸리는 일들이 많아서 감히 결혼을 생각지 못했다.

먼저 결혼한 언니가 몸이 안좋아서 조카를 키우다시피 했고 조카가 조금 크니 이번엔 동생을 건사해야 했다.
네가 그정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너도 네 살 길 찾으라고 말했지만 맘이 편치 않아서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다.

동기간의 우애를 내가 해치는게 아닌가 싶어 더 이상 말은 못했지만 참 안타까웠었다.
동생의 건강이 좋아질 무렵 형부가 하시던 일이 부도 나는 바람에 후배와 후배의 동생은 살던 집의 전세금을 언니에게 주고 언니집으로 들어갔다.

'하... 이건 아닌데....'

"이게 최선인것 같아서...."
후배의 대답이었다.  

이후 나이는 많고 결혼할 돈은 없는, 모르는 사람들은 실속없이 살아온 사람이라 판단할지도 모르는 그녀는, 결혼을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만나거나 통화할때마다 좋은 소식있냐고. 만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보면 아직이라고 하더니 올 봄 쯤 결혼을 할 것 같다고,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흥분된 기분에 이것저것 물어보니 만나서 자세히 말하겠다고 하는 말투에 왠지 기분이 안좋더니 직접 들어보니 결혼을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있는 연하남, 게다가 시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한단다. 
결혼은 천천히 더 교제하고 생각하라 했더니 이미 상견례까지 한 모양이었다.
"이게 내 팔자인거 같애"

헤어지고 돌아와서도 마음이 너무 쓰인다.
겉보기의 조건도 안좋지만 자잘한 조건도 걸리는게 많은지라 후련한 마음이 들지 않아서 속상했다.

문자로 '아까는 속상해해서 미안해. 네가 잘 판단해서 결정한 사람이니 나는 축복만 해줄게'  라고 보냈더니, '언니, 잘 살게요.'라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결혼식..
후배는 마냥 행복한 신부처럼 웃고 있었고 나는 가장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기집애. 살이 더 쪘네. 살 좀 빼지. 아들 딸 낳고 보란듯이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