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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남자들의 우정과 분노는 한끝차이


덕수궁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공사로 인해 좁아진 길을 가는데 앞에서 걸어오던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뒤의 누군가에게 말을 날린다.

"야~ 이 ㄱㅅㄲ야 제대로 알려줘야지. 거기 공사중이잖아."
"내가 그거까지 어떻게 아냐. ㅅㅍㄴ아."
"잘모르면 전화를 받던가. 똥개 훈련시키냐? ㄱㅅㄲ."
"O 만한 놈이 만났으면 된거지 왜 ㅈㄹ이야."
"ㅅㅍ놈이 맞아야 정신차리지, 너 죽을래."
"어쭈 형님한테 겁대가리도 없이 덤벼, 그래 덤벼라. OO아."

주옥(?)같은 욕설들이 내 머리 위를 지나쳐 상대방을 향해 달려간다.
목소리나 작아야 무시할텐데 이 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마치 사람들에게 일부러 표시내려 하는듯 오버액션이 심하다.

뒤를 돌아보니 그 화려한 욕을 얻어먹은 남자는 흐믓한 표정이다.
아주 해맑게 웃으며 다가온다.

앞의 남자도 연신 욕을 섞어가며 말하지만 표정만은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다.
드디어 만나게 되자 이번에 조금 거칠게 보이는 스킨쉽을 하는데 당사자들은 무지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가운데 있었던 나만 황당하고 민망하였다. 
하지만 남자들의 이같은 언행은 가끔 본 적이 있다.



오래 전 같은 직장에 있던 남자 직원도 친구와 전화를 하는데 그 친구는 사장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
"김사장님 바꿔주세요." 하고 친구가 받으면 그때부터 온갖 욕들을 섞어가며 통화를 한다.
그것도 자기가 부탁을 하는건데도 사장놈, 이자식, 저자식해 가며 통화를 한다.

그렇게해도 괜찮은지 물으면 죽마고우인데다가 경상도에서는 통상적인 남자들의 대화라고 했었다.
(맞나요?)

어쨌든 욕설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기분이 나빠보이지는 않았으나 옆에서 들어야했던 나를 포함한 여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욕설의 강도는 높아지고 애정(?)어린 스킨쉽은 과격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자들이 싸울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게 욕설인것 같은데
....
남자들이 싸울때 누구든 먼저 욕을 하는 순간 대부분 욕으로 받아치면서 큰 몸싸움으로 번지는것 같은데 같은 욕설에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다니.


가만 생각해보니 욕설의 내용은 같지만 발성할때의 방법은 조금 다르긴하다.

일반적으로 싸울때는 일단 눈을 부릅뜨고 욕설의 첫 음절을 강하고  쎄게 발음한다. 
게다가 욕설에는 ㅆ,ㅉ,ㄲ,등 경음이 많아서 입안에서 부터 긴장도가 높아 강한 파열음이 나오기 때문에 더 강하고 센 느낌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욕설을 듣는 순간 마치 얼굴을 한대 맞은것처럼 기분이 나빠지고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친한 사이일 경우엔 전체적으로 낮은 음으로 발성되며 마지막 음절을 내리거나 조금 길게 발성한다.  
그러면 느낌이 다정스럽게 전달되는가 보다.
아! 그러고보니 상대를 비웃거나 비아냥거릴 때도 뒤음절을 길게 끌면서 올린다.




~~
아들녀석에게 넌즈시 물었다.

"너도 욕좀 하냐?"
"집에서는 안해."
"학교에서는 하는구나!  다양하게 구사하냐?"
"쵸큼"
"왜 욕을 해?"
"원활한 의사소통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서."

엥? 쬐그만 남자들 사이에서도 욕은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며 관계유지를 위한 표현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