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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동생은 잘 있는지, 친구야 말 안해도 내 맘 알지?

 

동생은 잘 있는지, 친구야 말 안해도 내 맘 알지?

고등학교 때 어울려 다니던 친구 4명이 있다. 지금 그 친구들과 1년에 한번 정도 만나 수다를 떨곤한다. 그중 한 친구가 제일 늦게 결혼을 하는 바람에 누구 아들은 군대에 갔는데 그 친구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에휴~ 언제 키울꼬.

 

친구는 끼리끼리 만난다고 다들 소심한 성격이라 4명이 모여도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우린 드러나는 무리가 아니었다. 고3때 알게 되어 1년 여를 같은 교실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 지금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지만 그 당시는 학력고사인 대입시험을 끝내고 우린 그제서야 느긋한 마음으로 서로의 집을 방문해 가며 여가를 즐겼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간 친구의 집.

아담한 1층짜리 깔끔한 양옥이었다. 친구와 꼭 닮은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친구의 방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오래 된 화장대가 있었고 여학생 방답게 인형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햇빛도 잘 들어오던 자그마한 방이었다. 벽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다 잠깐 나갔던 친구가 들어오더니 동생을 소개 시켜주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동생이 있었나?  그런 말 없었는데?

 

부엌 옆으로 숨어 있듯 보이는 방 문을 여니 당시 10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이불에 누워 있었다. 한 눈에 장애아라는걸 알 수 있었다. 턱받이를 하였으나 이미 침이 많이 흘러 축축해진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당황했지만 우리들은 내색을 하지 않고 친구따라 옆에 앉았다. 친구는 동생을 반쯤 일으켜 세워 무릎에 기대게 하고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놀랐지? 너희들한테는 비밀로 하면 안될것 같아서..."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숨죽이며 친구의 하는 양을 바라보기만 했다. 친구는 묻지도 않았는데

"난 결혼하면 **이를 내가 데리고 가서 돌봐줄거야."

친구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라고 대답은 했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우리는 죽을 먹이는 친구와 죽을 받아 먹는 동생의 얼굴만 쳐다보았었다. 어린 우리가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위로의 말은 없었다.


그 이후 우린 그 친구를 만나도 아무도 동생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동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물어보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여전히 우린 조용한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이었고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그리고나서 10년쯤 흘러 친구의 어머니가 당뇨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그때까지 동생은 어머니가 돌보고 계셨다고 한다.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던 어머니는 동생을 보호시설로 보내려고 2번이나 문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문상차 들렀을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생을 어찌할거냐고 하니 이젠 보호시설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엄마한테 미안해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했었다. 나는 말은 안했지만 혹시 그 친구가 예전에 자기가 돌보겠다는 말 때문에 맘에 걸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10여년 이상이 흘렀다. 나는 친구 동생의 존재에 대해 잊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만나서 이야기할 땐 생각이 안나다가 꼭 헤어지고 나면 그 동생이 생각난다. 지금은 어찌 지내는지 중간중간 가끔 물어봤다면 괜찮았을텐데 그동안 한번도 물어보지 않다가 뜬금없이 물어보자니 생뚱맞아 보이고 지금 어떻게 지낼지 짐작이 가기도 해서 물어 볼 수가 없다.

 

             ▲ 바이올렛(꽃말 : 영원한 우정)

 

동생에 대해 애처러워하는 친구가 나는 더 애처럽게 보였기 때문에 차마 물어 볼 수 없었는데 혹시 친구는 안물어 본다고 섭섭해 하지 않았을까? 지금 동생은 더 이상 돌 볼 사람이 없으니 시설에 가 있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되는 친구의 마음을 알겠기에 감히 물어 볼 수가 없다.

친구야~ 내 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