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부부란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과정

 

 

부부란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과정

 

 

 

 

 

박목월 시인의 아드님이신 박동규 교수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tv에서 뵐때는 젊어보이셨는데 실제로 뵈니 연로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강단에 서시더니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시고 천천히 강의를 시작하셨다.

 

가벼운 주제였고  문학을 전공하신 분이시라 그런지 교수님의 강의는 한 편의 수필을 읽는것 마냥 물 흐르듯 부드러웠다. 본래 주제는 '부부'가 아니었지만 강의 중  '부부란 뭐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셨고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부부가 뭔지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교수님의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자주 삼천포로 빠졌다. 교수님은 "부부는 일심동체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아요? 그 인간이 내 맘을 잘 알아줍디까?" 라고 말씀하셨고 거침없는 노교수의 화법에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수님은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겪는 거라고 하시며 일심, 한 마음이 되려면 내 마음도 알려줘야하고 상대방 마음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부부는 항상  '나는 이런데 당신 마음은 어때요?'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오래 산 부부라도 '말 안해도 알겠지, 꼭 말로 해야 되나?' 라고 미리 넘겨짚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지금 현재 배우자의 마음이 나와 같은지 다른지를 대화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부부는 전생에 웬수였고 자식은 빚쟁이였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부부는 투닥투닥 싸우고 자식에겐 무조건 퍼 준다는 것인데 한편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 평생 부부싸움 없이 사는 부부도 있고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부모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말에 동감하는 이유는 대체로 부부들의 사는 모양새가 투닥거리며 사는 모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늘님은 왜 전생에 원수를 만나게 하셨을까? 싸울거 뻔히 아실텐데 말이다. 구경 중에 남 싸우는거 구경하는게 제일 재밌다고 구경하시려 그런 것일까?ㅎㅎ 

 

게다가 왜 연애 중엔 원수라는 걸 못 알아보고 결혼을 하고 난 후에야 알아보게 하셨을까? 미리 표시를 해 놔서 너희는 원수이니 만나지 말아라 하셨으면 세상이 조금 더 조용했을텐데 말이다. 조물주의 큰 뜻이 담겼으리라 짐작만 하고 우리 부부의 사는 모양새를 영화필름 돌리듯 주루룩~ 돌려보았다.

 

 

 

결혼 전 교제 기간까지 합치면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같이 보냈다. 긴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일심동체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 중 '동체'- 신체의 외형적 라인이 비슷해져 동체는 조만간 이루어 질 듯하다.  '동심'-이건 비교적 다른 부부들에 비해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인지 나는 남편의 마음을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남편은 아니다. 항상 나중에 "말을 하지 그랬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부부라면 '이심전심' 텔레파시가 통해서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내 맘을 읽지 못하는 남편이 서운했다. 그러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내 마음을 가능한 직접적으로 말해주려 노력한다. 그래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말은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엔 자연스럽지가 않아 손발이 오글거렸다.

 

그래도 감정적인 오해가 생기지 않고 가벼운 사과는 바로 받을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변화지만 남편도 이젠 '~하자.'의 자기 주도적 명령형 말이 아니라 '~할까? 또는 ~하는건 어때?' 라는 배려형 말을 가끔 한다. 그러면 나는 오글거리는 대답으로 "그렇게 물어봐줘서 고마워" 말한다.  그러고 나면 팔뚝에 돋아나는 닭살을 한참 긁어야 하지만 기분은 좋다.

 

♣♣

 

 

부부는 일심동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사이라고 한다면 동체가 되었으니 우리 부부는 반은 성공했다. 이제 일심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데 아직은 노력도 더 필요하고 시간도 더 필요하다. 얼른 서로를 배려하는 말이 입에 익숙해지고 배려하는 행동이 몸에 익숙하게 배여서  '부부란 뭘까요?'라는 질문에 '일심동체지요'라는 대답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