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이 드라마가 인기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지명도있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상파 방송도 아니어서 신경쓰지 않았는데 우연히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다른 배우들은 잘 모르겠고 성동일과 서인국, 은지원 정도만 아는 얼굴이었다.
성동일은 관록있는 배우라 열외하고 은지원은 예상대로 조금 어색한 연기가 돋보이지만 예상밖으로 서인국의 연기는 눈을 동그랗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사투리를 어찌나 잘 구사하는지 입에 착착 붙은 대사와 눈빛연기, 감정 연기, 어색하지 않은 행동 등 흠잡을데가 없다. 그러다보니 빠져들며 보았다.
서기 1997년, 응답하라
1997년, 나는 10대도 아니고 20대도 아니었다. 화면에 그려지는 장면들은 H.O.T나 젝스키스, 핑클 등 당시 인기가수들에 열광하는 10대들의 모습이 주를 이루었고 박찬호의 모습도 추신수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향수를 자극했다.
마치 다큐 프로를 보는 것처럼 연기자들은 10대 청소년을 연기하고 30대 젊음을 연기하고 40대 기성세대를 연기하고 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노래방을 가고 남녀공학의 학교 배경등이 나의 10대와는 다르지만 어느 새 그 장면에 나의 10대를 겹쳐서 보고 있었다.
가수 조용필의 전성시대였고 그룹 송골매가 스타탄생처럼 나타나서 가요계를 흔들던 시대였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고교야구가 뜨거운 열기로 사랑을 받았고 교복이 없어지고 사복입기가 처음 시행되던 시기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화보집니아 엽서, 브로마이드, 책받침 등이 불티나듯 팔렸고 그들의 사생활은 자주 여고생들의 수다 주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
우리반에는 조용필의 광팬이 한명 있었고 스타 고교야구 선수의 광팬이 있었다. 가수의 콘서트는 주로 야간에 있으니 등교문제와 대치될 상황은 없었는데 간혹 중요 야구경기가 수업시간과 겹칠 때는 이 아이가 아프다고 결석을 했다. 다음 날 오면 아픈 척 하지만 쉬는 시간에 들어보면 몰래 야구장에 갔다 온 이야기를 자랑하듯 얘기했었다.
갑자기 야구선수 이름이 떠 오르는데 이 친구는 박노준 선수의 광팬이었다. 조용필을 좋아했던 친구는 무남독녀였는데 얼핏 듣기로 학교 앞 문방구의 조용필 사진은 몽땅 그 친구가 샀다. 조용필의 얼굴이 문방구 진열대에 걸려있음 마음이 아프다나 뭐라나 하여간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 문방구 사진은 그 친구가 싹쓸이를 했다. 나는 전영록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기보다 친한 친구가 좋아하니 따라서 좋아했다가 맞겠다. 나중에 알고보니 키가 그렇게 작은 줄은 정말 몰랐다.
경기가 불황일때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아이템들이 인기를 얻는다고 한다. 팍팍한 현실의 도피처로 과거를 찾고 그 안에서 위로를 얻고자 하는 심리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총체적인 경기 불황에 대한민국 사람이면 어느 누구도 이 답답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을 보면 아련한 당시가 떠오르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맞아,그땐 그랬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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