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어른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공포 이야기가 있다. 여름날 납량특집처럼 더위를 잊게 할만큼 무서운 이야기였다.
놀란 아들은 아버지를 깨워 도망가려했으나 잠에 취한 아버지는 깰 줄을 모르고 아들은 어쩔 수 없이 혼자 도망쳐 창고 옆에 숨었다. 잠 든 아버지는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그 인육은 시장에 내다 팔리는 광경을 아들이 목격하고 말았다.
아들은 관가에 가서 신고를 하고 아버지를 죽인 남녀는 붙잡혀 교수형을 당하고 그 머리를 성 문 높은 곳에 걸어 두게 하였다.
어릴 때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즈음에 들었던 이 이야기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그날 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귀로 들은 이야기가 자꾸 상상이 되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기억이 흐려져 무서움이 덜해졌지만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전래동화 속의 또 다른 면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래동화 중에 권선징악의 주제를 담은 이야기들 중에 나쁜 사람을 징벌하는 내용이나 억지로 나쁜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 잔혹하다고 할만한 내용들이 의외로 많다.
원작이 그랬던것인지 아니면 구전되다보니 내용이 와전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무신경하게 읽어버린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런 내용을 아이들에게 읽게해도 괜찮은지 경악스러울 때도 있다.
(헨젤과 그레텔) 친부모가 가난에 못이겨 아이들을 일부러 버림, 숲 속에서 만난 마녀를 불 타는 오븐 속으로 밀어넣음.
(백조왕자) 가시가 많은 쐐기풀로 11명의 오빠들 옷을 짜야함
(빨간 구두) 신기만 하면 멋진 춤을 추는 빨간구두가 벗겨지지 않아 결국 발목을....
(개구리 왕자) 개구리와 지내는 것이 무섭고 징그러웠던 공주는 개구리를 힘껏 벽을 향해 집어 던진다.
(장화홍련전) 착한 자매를 죽게 만든 계모는 능지처참하고 그의 아들은 교수형에 처했다.
원작 속 이야기들의 내용을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동화들은 그때부터 스릴러물로 분류될 수도 있을 만큼 잔혹한 영상들이 보여질 것이다. 다행히 귀로 듣거나 활자로 된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희석되어 전달되니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권선징악을 위한 잔혹한 동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동화에 대해 강의를 하시던 어느 분 말씀을 빌리자면 아이들에게 '악'에 대한 확실한 처벌을 각인시켜 사회적인 도덕이나 규범을 지키려는 일종의 교육이었다는 말씀과 함께 당시에 그런 형벌이 실제로 있었음을 알려주셨다. 하기야 옛날엔 신체에 직접 가하는 징벌들이 많았으니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보니 내용이 끔찍하다는 인지를 잘 하지 못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내용보다는 착한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고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계에서 아동용 동화를 퓨전으로 각색하거나 어른용으로 살짝 바꿔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재해석된 친근한 동화를 다시 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혹여 몰라도 되는 내용이 추가되거나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내용의 영화가 원작보다 더 각인되어 원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잊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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