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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인사동 화재을 보며 생각난 외할머니의 화재 공증 사건

 

안타까운 인사동 화재을 보며 생각난 외할머니의 화재 공증 사건

인사동에 폭발을 동반한 큰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자막과 함께 속보를 전해졌다. 정규 뉴스 시간에 보니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고 그 불은 목조건물인 상가들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고 한다. 상가 8채에 19개 점포가 전소 되었다니 그 피해가 얼마나 막심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화재 장소가 먹자골목이라는 말에 외할머니가 겪었던 화재 사건이 생각나 가슴이 더 아팠다.

 

외할머니의 화재사건

30여 년전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 온 외할머니는 좋은 음식 솜씨를 살려 재래시장 안에서 빈대떡 장사를 하셨다. 그때는 연탄화덕을 피워 음식을 만들고 저녁이면 연탄불을 꺼 놓거나 아니면  연탄불이 거의 죽지 않을만큼만 바람구멍을 열어 놓고 귀가를 하셨다.

그런데 밤 사이에 시장에 불이 났다. 외할머니 가게를 비롯해 시장안에 있던 다른 분들의 자리까지 불에 타고 말았다. 불이 꺼지고 시장 관리소에서 사람이 나와 화재원인을 찾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았나보다. 불씨가 될만한 소지를 가졌던 가게들이 3-4군데 있었는데 외할머니를 비롯해 모두 아니라고 하는건 당연했다.

그런데 관리소장이 와서 외할머니께 화재원인을 빨리 알아야 이번 화재사건을 마무리짓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보험사에 청구하면 피해보상을 다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일단 할머니가 했다고 서류상으로만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빨리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과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도장을 건네주었는데 그 도장이 찍힌 곳은 '공증서류'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이모들에게 외할머니는 잘 마무리 됐다는 말씀을 전하셨지만 얼마 후 피해보상을 하라는 서류를 받게 되었다. 그제서야 다시 모인 이모들은 이미 외할머니가 공증서류에 도장을 찍어 화재에 따른 피해보상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외할머니는 몸져 누우시는 지경이 되었다.

당시 큰 아들은 백일도 안된 애기를 두고 쿠웨이트로 돈벌러 나갔고 작은 아들은 군에 있을 때였다. 큰 외삼촌이 먼 타국땅에서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을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전화로 큰 외삼촌과 상의 후 집을 팔고 피해보상을 해줘야 했으며 이 일로 외삼촌은 몇 년 더 연장근무를 해야만 했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빠른 복구를 기대하며

어릴 때 들었던 '공증'이라는 말은 어른들의 무거운 얼굴과 오버랩되어 굉장히 무서운 '무엇'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한동안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공증, 공증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고 외할머니는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도 간혹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어리숙한 시골 노인네를 속인 관리소장을 탓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이젠 기억마저 흐려진 사건이 되었다.

인사동에서 난 화재도 이제 발화지점을 찾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피해를 본 상가들이 많고 화재 규모가 규모가 워낙 큰데 다들 영세한 업자들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화재보험이나 공제등에 가입해 두었다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인사동은 한국의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관광지이다. 서울시나 종로구에서 적극 나서서 피해상인들이 하루 빨리 생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복구에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