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를 통해 본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 - 왕오천축국전 직지심경 수월관음도 몽유도원도

 

 

1776년 즉위한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창덕궁에 규장각을 정식 국가기관으로 설립하였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의 왕실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으로 시작하였으며 점차 그 기능이 출판과 정책 연구까지 수행하는 특별한 기구였다.

 

1782년에는 규장각의 분소 형태인 외규장각이 강화도 행성에 설치되었는데, 설립 목적은 왕실의 중요 자료들을 보다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 및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에 의해 외규장각 궁전과 도서가 불타 없어졌으며, 외규장각 도서 중 의궤류와 고문서 일부가 약탈 당했다. <자료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그리고 2011 4, 외국의 침략에 약탈 당했던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1 4 14일부터 5 27일까지 4차례에 걸쳐 총 296권의 도서가 긴 여행을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어떻게 1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남의 손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

 

1866년 병인양요가 발발하기 전인 1813년 ‘외규장각도서포쇄형지안’이라는 자료에 의하면, 외규장각에는 총 1,0426,130 책이 보관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분량의 왕실 자료들을 보관하던 외규장각은 1866년 프랑스가 일으킨 병인양요에 의해 불에 타버리는 안타까운 운명을 맞았다.

 

병인양요는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 9명이 사형을 당한 일에 대한 보복으로 일으킨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별 저항 없이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군에 포위당하자, 후퇴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때 후퇴 명령을 내린 프랑스 지휘관 로즈제독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프랑스군은 은괴를 발견하자 귀중한 물품을 약탈하기 위해 외규장각 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괴 상자 외에 외규장각의 중요 도서, 족자 등을 손에 넣은 프랑스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엄청난 야만적인 파괴행위를 저질렀다.

 

중국으로 돌아간 로즈제독이 프랑스 해군성 장군에게 보낸 강화도 철수 보고서를 보면 프랑스 군이 강화도를 철수하면서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는 강화부 관아 건물과 여러 궁궐 건물, 외규장각 건물 등을 파괴 및 방화하였다고 적고 있다.

 

순조 때 외규장각에 보관 중인 도서가 총 1,042 6,130 책이었는데 프랑스 군들이 약탈해간 도서가 200 340책이었으니, 나머지 많은 도서들은 프랑스 군의 방화로 한 줌의 재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약탈당했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가 반환이 아닌 5년마다 재임대하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문화재청과 관련 기관들의 추산에 따르면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20여 개국에 7 5,000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가장 많은 문화재가 유출된 나라는 일본으로 약 3 5,000여 점이나 된다.

 

물론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 모두가 약탈로 불법 유출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 문화재는 약탈에 의해 반출된 것이 사실이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외침을 당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반출된 문화재를 돌려 받기가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인 외규장각 도서는 반환 형식이 어떻든 간에 우리에게 돌아왔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소중한 문화재들의 반환을 위해 전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면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 중 국보급 문화재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왕오천축국전

 

신라의 승려 혜초가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답사한 뒤 727년에 쓴 여행기이다. 1908년 프랑스의 탐험가 P.펠리오가 중국 북서지방 간쑤성의 둔황 천둥불 석불에서 발견하였으며, 중국의 나진옥에 의해 왕오천축국전임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1943년 최남선이 원문에 해제를 붙임으로써 널이 국내외에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요절)

 

구텐베르크보다 80년 앞선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직지심경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표현은 직지심체요절이 맞다.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주최로 개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5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 전시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直指)<사진 연합뉴스>

 

 

 

수월관음도

 

고려시대 불화로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있다. 바위 위에서 반가좌한 관음보살로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관음보살도이다. 현재는 일본 사가현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몽유도원도

 

1447(세종 29)에 화가 안견이 그린 산수화다. 그림의 내용은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본 도원의 광경으로 이를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하였다 한다. 현재는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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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덴티잡스 2013.09.19 0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네요.
    어서 빨리 우리물건들 돌려주었으면 하고 우리도 우리거 달라고 노력해야 하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2. BlogIcon 이바구™ - 2013.09.23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사시간에 들었던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들이 하루빨리 반환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