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동백꽃』
오늘도 우리 집 수탉은 점순이네 수탉에게 피가 뚝뚝 떨어지도록 쪼이었다. 점순이는 나흘 전 그 일 이후로 수시로 우리집 수탉을 못살게 구는데 그때도 나는 저에게 아무 잘못한 것이 없다.
뒤에서 갑작스레 나나탄 점순이가 내민 감자를 퉁명스럽게 내치었지만 그건 점순이가 먼저 기분 상하는 말을 했기 했기 때문이다.
"느 집엔 이거 없지?"
봄감자가 특별히 맛있는데 내가 너를 주는거라며 남이 보기 전에 얼른 먹으라는 말에 심사가 뒤틀려 안먹는다 했더니 그날 이후로 점순이는 내 주위에서 나와 우리집 수탉을 수시로 괴롭히고 있다.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점순이네 덕분에 먹고 사는 처지라 함부로 할 수도 없으니 더 속이 상한다. 그런데 점순이가 나 몰래 닭을 꺼내어 또 괴롭히길래 화가 나서 점순이네 수탉을 패댕이 쳐 버렸고 닭은 죽었다.
이제 집이고 뭐고 다 내 놓을 판이라 서럽게 우는데 점순이가 이제 그러지 말라고 다짐을 받는다. 나는 뭔지 모르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하다가 점순이와 함께 동백꽃 속으로 넘어졌는데 순간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하였다.
『동백꽃』 작품속으로
"너 일하기 좋니?"
"한 여름이나 되거든 하지 벌써 울타리를 하니?"
소녀는 호감이 있어 건네는 말인데 소년은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게다가 어쩌면 큰 용기를 내어 건넸을 귀한 봄감자를 쳐다보지 않자 소녀는 자신이 거절당했음을 알고 자존심이 상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니 애꿏은 소년의 닭에 감정을 담을 수 밖에. 향토색 짙은 작품으로 유명한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의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싸움이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한다.
점순이의 적극적인 구애(?)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순박한 '나'의 심성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순이네와 관계가 마름(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은 사람)과 소작인이었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우리집 생계의 끈을 쥐고 있는 점순이네와는 이전부터 여러가지로 감정적인 부분이 억제되어 왔을 터이니 점순이가 내미는 감자 세 알이 '사랑'이 아니라 '동정'으로 느껴졌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 점순이의 용기있는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점순이의 말을 잘 듣겠다고 해버렸으니 말이다.
사실은 노란 동백꽃
김유정의 작품 '동백꽃'은 남부 지방에서 피는 빨간 동백꽃이 아니다.
봄에 강원도에서 볼 수 있는 동박나무(생강나무)인데 동백나무라고도 부르며 노란 꽃을 피우는 나무이다. 꽃에서 생강냄새가 난다. 봄 기운이 도는 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인데 한번도 냄새를 맡아 본적이 없으니 그 냄새를 짐직하지 못하겠다.
안개꽃처럼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에서 생강처럼 알싸한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진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어찌 결말을 맺었을지 뒷얘기가 궁금해지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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