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의 날씨가 가을과 겨울을 모두 품고있다. 쾌청한 하늘에 기온이 차가왔다.
가능하면 가을에 오대궁궐을 모두 돌아볼 계획이었는데 벌써 겨울이 되었다.
궁궐 나들이 네번째로 덕수궁을 돌아보았다. (경희궁-경복궁-창경궁은 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덕수궁은 다른 궁궐과는 다르게 궁궐같은 느낌이 덜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궁궐나들이를 계기로 덕수궁은 어는 궁궐 못지않게 소중한 궁궐로 다가왔다.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교대식이 진행되는데 색다른 볼거리이다.
중화전 내부의 용상과 일월오봉도가 정전의 위상을 보여준다.
석어당은 덕수궁 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층 전각이다. 선조가 승하한 곳도 이곳이다.
즉조당은 아이러니하게도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식을 가진 건물이라고 한다.
준명당은 고종의 늦둥이 딸인 덕혜옹주를 위해 국내 최초의 유치원이 설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준명당의 명자가 특이하다. 밝게보일명이라고 당시에 가장 유행한 글자라고 한다.
그리고 고종은 명성황후의 시신을 꽤 오랜기간 안치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왕비의 신분을 황후로 명하기 위해서 였다고 하니 고종의 아내사랑은 남달랐었나 보다.
다른 궁궐과 달리 덕수궁에 왕비의 침전이 따로 없는 것은 명성황후가 승하한 뒤, 고종이 따로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물 처마에 단청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다.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다.
한번은 임진왜란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부터이다.
경운궁(덕수궁의 원래 이름)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말기 러시아공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부터이다.
덕수궁을 나오며 다른 궁궐에 비해 유난히 썰렁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궁 안에 울타리처럼 둘러선 일본을 비롯한 각국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지켜보던 고종의 눈물과 명성황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리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조선이 국난에 휩싸였던 어려운 시기마다 궁궐로 사용되었기에 덕수궁은 그렇게 좋은 터의 궁궐자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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