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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동화로 보는 세상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적당할까? '그 길에 세발이가 있었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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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 '세발이'는 발이 세개 뿐이다.
왜? 언제부터 발이 세개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더럽고 발이 세개뿐인 세발이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세발이는  달리기를 참 잘한다. 

엄마를 잃고 친척집에 살게 된 소년도 항상 외로웠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로웠던 그에게 세발이가 꼬리를 흔들며 마치 같이 놀자고 손짓을 하는듯 다가왔다.

그때부터 소년은 세발이와 달리기를 하며 놀았다.
한참을 뛰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향기로운 냄새도 맡아지곤 했다.
어느 덧 둘은 매일 매일 만나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뛰어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발이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찾아헤매다 역전 쓰레기통 옆에 처참히 쓰러진 세발이를 발견했는데 그 때 세발이의 눈빛은 마치 '네가 올 줄 알고 있었어. 너를 믿으니까.'라고 말하는 듯 했다.

소년은 누가 이런 못된 짓을 했을까 속상해하며 세발이를 치료해 주었다.
다행히 세발이는 완치되었지만 소년은 친척집을 떠나야 했다.
소년이 탄 버스를 한참동안 따라오던 세발이는 큰 길 끝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소년이 탄 버스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는 지금 여전히 혼자 길을 걷고 있지만 괜찮아. 눈을 감으면 그 길에 세발이가 있으니까...'라며 생각한다.



현대인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 중 하나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이유만 보자면 이 동화속 세발이의 모습이 정답이다.
엄마를 잃고 낯선 동네로 와서 어렵게 적응하고 있는 소년에게 세발이는 말동무도 되어주고 같이 뛰노는 또래 친구도 되어 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발이가 길거리 개라 더러워서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개와 같이 있는 소년마저도 좋아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아! 사람들도 때깔좋고 깨끗한 동물만 좋아하는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이러다보니 동물을 좋아하지 않거나 무서움을 많이 타는 이들은 불쾌감을 느낄때가 있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나보다 빠른 것들은 모두 무서움의 대상이다. 
나보다 작거나 느린 것들은 무서워 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대체로 새끼들은 귀엽다. 
특별히 사고를 당한 기억은 없지만 크고 빠른 동물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다.
언제 그들의 본능이 나를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도 동물이니 사람도 무섭겠네?'라고 물어보면 물론 그렇다.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도 무서울 때가 있다.(당연한 소린가?)

예전과 달리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그 외로움을 가장 친근감 있는 동물들 중 하나인 개나 고양이들이 그 빈 자리를 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단면만 본다면 동물을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쉽다면 동물을 아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물의 마음은 잘 알아채면서 그 반대인 동물을 너무 너무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