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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기러기 엄마의 걱정거리



친구네 부부는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집안이다.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 가족이 모두 기도하고 성경 공부를 하며 주말에는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활동하면서 더 깊은 신앙심을 키웠다. 10년전쯤 나는 나중을 대비한 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그 친구는 교회에서 봉사할 생각으로 같은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엔 잘 모르고 지내다가 1년후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람들과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와의 공통점이 많다는걸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동갑이었고 같은 직종에 있었으며 남편의 나이도 같고 아이들의 나이도 같았다.


결혼도 같은 해에 했고 아이도 같은 해에 낳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자주 통화를 하면서 우정을 나눴다. 그러다 8년 전 큰 아이가 유학을 간다고 했다. 좀 먼 곳으로 혼자 가는데 1년있다 남편이 갈거라 했고 1년 더 있다 딸도 유학을 갔다.

신학공부를 할거라고 했는데 워낙 신앙심이 깊은 친구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몇 년 뒤엔 친구도 가게 될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친구는 여기 남아 있고 남편과 아이들만 해외에 있다.


그런데 며칠전, 딸아이를 국내로 데리고 와야 할것 같다고 한다. 첫째가 아들인데 그 녀석은 나름 학교생활도 잘하고 대학진학도 무난히 잘해서 괜찮은데 남편과 딸아이의 마찰이 심해서 둘 다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고.

남편은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잘 보살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딸아이가 자꾸 어긋난다며 아주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딸은 딸대로 아빠 잔소리 때문에 미쳐버릴것 같다고 하고.

아빠의 눈에는 딸아이의 행동이나 차림새가 지나치다고 하고 딸아이는 너무 심하게 단속한다고 하면서 부녀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둘 다 친구(부인이자 엄마)에게 감정을 쏟아버리니 친구도 하다하다 지쳐서 아이를 데려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단다. 딸아이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하고. 

나는
"나오라고 해서 네가 데리고 있어라. 걔가 지금 아빠의 불신때문에 더 속이 상한 모양이다. 매일 딸을 감시해야하는 남편도, 아빠의 눈치를 봐야하는 딸아이도 서로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쌓일 것 같다.  그러니 한국으로 오라고 하는게 좋겠다."

그래서 친구도 데려오려고 하는데 남편이 반대를 한단다. 감당못할거라고. 직장 다니며 어떻게 애를 돌볼거냐고.

나는
"24시간 애 옆에 붙어 있어야 돌보는 건 아니지. 그럴 나이도 아니고. 적어도 딸이 엄마 옆에 있으면 아빠 하고 있을 때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 같은데. 니가 금방  합류할 수 없으면 나오라고 해. 나도 우리 딸하고 하루에 11번 싸우고 12번 화해하지만  묵은 감정은 없어. 그리고 같은 동성이라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있어서 감정의 골이 생기지 않지만 아빠는 이성이라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친구의 남편이 워낙 성실하고 모범생 스타일이여서 엄마와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돌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드신가 보다. 부인인 친구도 얌전하고 조용하고 행동이 조신하니 모든 여자들의 행동거지를 그 기준에 맞춰보면 자유분방한 딸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하고 불안해 보이는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내 기억속의 꼬맹이 딸아이는 오빠와 3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게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게 있는데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춘기때 한번쯤 튀고 싶고 나를 강하게 어필하고자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딸아이도 어린 나이에 엄마의 도움없이 예민한 시기를 아빠와 같이 보내면서 나름 속상한 적이 많았을 것 같다. 아빠와의 다툼에 힘들고 속상할때 위로해 줄 엄마는 너무 멀리 있고 또래 친구들과 얘기해도 뾰족한 해결방법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아빠는 엄마가 올때까지 잘 키우고픈 마음에 힘들고, 아이는 커져서 더 이상 품에 있으려하지 않고 두 사람의 갈등을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기러기 엄마인 내 친구.

셋 중에 나는 내 친구가 제일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