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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오~래오래 옷 사 주세요



"얘! 이따 터미널에서보자. 나 지금 출발한다."
친정 엄마의 호출이다.
"왜~에? 무슨 일인데?"
"내 옷 사러 갔다가 너한테 딱 맞는 옷이 있어서 같이 샀어. 얼른 와봐"
"아휴~ 왜 샀어,엄마. 지난번 것두 아직 쓸만한데. 가서 환불해."
"이거 아줌마가 너한테 잘 어울릴거래. 잔말 말고 얼른 나와."
이번엔 어떤 옷을 사셨나?

                                                    ▲ 사진출처 : 메이메이

친정엄마 연세가 70대 중반이시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고 예쁘게 늙으신 할머니이고 친구분들한테 멋쟁이라는 평을 들으시는 분이다. 엄마는 5자매 중 둘째,  다행히 모두들 건강하시고 곱게 늙으셨다.
젊어서 미인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땐 형편이 어려워 멋내지 못하시다가 친정 아버지 덕분에 연금을 타시게 되니 여유가 있어서인지 옷이나 신발 기타 악세사리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었고 이젠 아주 멋쟁이가 되셨다.

내가 30대초반 이었을 때, 명절에 친정에 갔다가 엄마 옷장을 우연히 열었는데 옷이 아주 많았다. 싸구려 옷은 아닌것 같아서
"옷이 전부 좋으네" 그랬더니
"너 이거 입어 봐" 자켓인데 색깔도 사이즈도 잘 맞았다. 괜찮아 보였다.
"너 이거 입어. 나 두번밖에 안 입었어."
"됐어. 엄마 입어."
나는 내가 좋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주시는 것 같아서 사양했지만 엄마는 부득불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내가 애들 키우고 시댁살림하랴 옷 사입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옷을 사 나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절했는데 
"니 아부지가 사주는거야."
보훈대상으로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연금을 받고 계시다.

60대 였던 친정엄마가 보시기에 좋아보였던 옷이 맘에 들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감사하게 받아서 잘 입었다. 그런데.... 점점 내 나이가 들면서 옷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친정엄마의 연세가 70세에 가까워지다보니 디자인이 친정엄마 나이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딸은 내가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면 외할머니가 주는 옷좀 입지말라고 하고 지인들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거 자기 옷 맞어?"
거기다 시어머님도 당신 옷을 나에게 물려주신다. 딱 한번밖에 안입은건데 니가 입으면 잘 어울릴것 같다고 하시면서.

시어머님도 옷에는 센스가 있으셔서 멋있게 입으시지만 그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디자인이나 라인이 다른데 나름 아끼던 옷을 주시니 거절할수도 없고 내가 가져가야 새 옷을 사실것 같아서 냉큼 받아온다. 받아오긴 하는데 가져오면 이게 난감하다.
 
30대때는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입었는데 40대가 되니 옷 보는 눈이 달라져 그런지 맘에 들지 않는 옷은 입기가 싫다. 그렇다고 새로 사지도 못한다.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주신 입을 만한 옷이 있기때문에. 그리고 이제는 입고 거울을 보면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서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작년 가을 친정엄마가 몇년전에 주신 옷을 입고 남대문시장에 가다가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너무나 나이 들어 보여 급 우울해졌다.
올해까지만 입고 버릴려고 했던 건데 도저히 그냥 다닐 수가 없어 외투를 샀다. 옷을 갈아 입고 거울을보니 딴 사람이 된듯 보였다.
같이 갔던 남편도 한마디 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맞긴 하네. 이제 그 옷 버려라."


이번 명절에도 시어머님 누빔외투 한벌과 친정엄마 모직외투 한벌을 받아왔다. 
뭐라하는 딸래미와 상의해서 리폼을 해서 입어야 할 것 같다. 
한 5년만 더 있으면 이젠 나도 두 분의 옷이 잘 어울릴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점점 라인이 실종되어 간다....
입던 옷이던 사주시는 옷이던 다 입을테니 오~래 오래 옷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