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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이별 익숙하지 않지만 이제는 연습이 필요한 일상

 

이별 익숙하지 않지만 이제는 연습이 필요한 일상

 

 

얼마 전 먼 친척의 장례식에 다녀오고 나서 친구 아들의 입대 소식을 들었다.

 

너무 어릴 때 보고 안 본지가 오래되어서 지금 본다고 해도 잘 모를 터이지만 왠지 그 아이의 입대 소식에 한숨짓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짠하니 마음이 안 좋다.

 

 

 

짧은 이별과 긴 이별

 

혼자서 아들 하나 키운 이가 그 친구 한 명인 건 아니지만 마음이 쓰이는 모자이다.

 

 

 

 

 

몇 년 전,자신의 아들이 아님에도 동네 꼬마적부터 봐 온 아이가 입대한다는 소식에 눈물짓던 지인을 보면서 왜 남의 집 아들 군대 가는데 우느냐고 타박을 했었는데 이제사 그 기분을 알것 같다.

 

그 때 지인도 이런 기분이었나보다.... 

 

가을이 주는 쓸쓸함에다 빈 자리가 주는 쓸쓸함이 더해져 더 스산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녀석은 하필 이때 군대를 가서 지엄마를 쓸쓸하게 하는지.

 

어제 집 근처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동네 지인이 핸드폰 문자를 보더니 한숨을 짓는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니 핸드폰 문자를 보여주는데 '가정법원 도착 접수 대기 중' 이라는 문자가 보였다. 친구가 이혼 서류를 접수하러 법원에 갔다는 말과 함께 증인이 필요해 본인이 증인을 서기로 했다는 짤막한 이야기를 전해 주며 또 한숨을 짓는다.

 

 더 이상 묻지는 않았지만 지인의 한숨이 많은 이야기를 대신해 주었다.  지인은 나이를 먹으니 이전까지 겪어보지 않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인생은 회자정리, 이별 연습이 필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직장이나 사회에서 새로운 지인들을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금쪽같은 아이를 만나고 결혼하는 친구를 통해 또 그 가족들을 만나고 하는 '만남'의 시간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별해야 하는 시간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처럼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기도 하고 입대나 이혼처럼 공간적인 이별이나 관계의 이별 등 앞으로는 많은 이별이 더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이별이란 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데 근래 일어난 일들이 마음을 산란스럽게 한다. 어찌 보면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또 만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사인데 준비된 이별도 그렇지 않은 이별도 항상 이별은 낯설다.

 

그러니 혹자는 이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낸 아내의 이별이나 아들을 군에 보내야 하는 어미의 이별이나 이제 부부의 연을 끊으려 하는 그녀의 이별이나 모두 그들에겐 아픈 이별연습이다.

 

별이 아프고 두려운 건 그 동안 함께 했던 것들과의 단절과 그로 인한 외로움 때문이다.  겪고 싶지 않은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도움이 될지 감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